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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정신’과 ‘헝그리정신’ 사이 어딘가에 예술이라는 보물섬이 있을까?
‘연극정신’과 ‘헝그리정신’ 사이 어딘가에 예술이라는 보물섬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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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2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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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스물 한 살의 겨울, 오디션을 보고 극단에 들어갔다. 잘은 모르지만 나는 단원이 되었고 단원이 되면 공연을 할 수 있다고 했다. 6개월간 청소와 인사, 설거지를 배웠다. 먼저 극단에 있던 사람들을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배웠다. 언제 어디서도 본적은 없지만 서로 익숙한 듯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은 분명 나보다 먼저 시작한 사람들 일 것 이라는 눈치도 배웠다. 그들을 모두 ‘선배님’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들은 나에게 몹시도 사적인 것을 자유롭게 물어보았고 언제나 반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절대 사적인 것을 묻지 말아야 하며 의견이 달라도 토론하는 것은 ‘몹시 버릇없는 행동’ 임을 배웠다. 성격이 좋거나, 성실하거나, 분위기를 띄우거나, 빠릿빠릿하거나 여하튼 어떤 이유로든 단원으로서 좋은 평판을 갖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배웠다. “연극을 하기 전 사람이 되어라” 라는 문구를 그 예로 배웠다. 7개월 째 부터는 공연연습이 시작되었다. 나는 경력도 없고 인맥도 없는 아주 어린 배우이기 때문에 어떤 급여나 페이는 받지 않는 것이라고 배웠다. 아! 오히려 아마추어인 나에게 수강료를 받지 않고 무대를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감사히 알라 배웠다. 그렇지만 연습에 방해되는 그 어떤 아르바이트도 하지 말라고 배웠다. 나의 정체성은 배우이기도, 아마추어이기도 했다. 몸매와 얼굴과 실력과 나의 모든 것은 언제나 평가의 대상이었지만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배웠다.

연극은 원래 배고픈 것이라는 통념과, 요즘 것들은 헝그리정신이 없다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일침 속에서 나의 20대는 예술이라는 보이지 않는 보물섬을 찾아 표류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 곳에서 살아남고 싶었고 이 곳에서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것도 잘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스물다섯의 겨울, 극단대표의 성추행으로 인해 극단을 탈퇴하고 예술이라는 보물섬은 찾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로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전 극단에 있던 다른 또래 동료 네 명도 극단을 탈퇴했다며 우리끼리 공연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가슴이 뛰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30만원씩 돈을 모았다. 우리끼리 역할을 분담했다. 대본을 찾고 포스터를 만들고 무대를 구상하고, 소품을 만들며 안무를 짜기도 하고 밤새 연습을 했다. 준비 기간 내내 우리는 자주 다투고 많이 웃었다. 아무도 혼나지 않는 이곳에서는 다툼을 통해 성장했고 우리는 다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공연당일 엄청나게 많은 관객들이 몰렸지만 선배들은 우리 작품을 혹평했다. 우리 연극은 실패한 걸까? 그런데 우리 공연이 왜 성공해야하지? 공연을 마치고 내게는 그들에게 되물을 힘이 생겼다.

이 글은 2020 연극의해 전국청년연극인 공론장에서 눈물을 꾹 참으며 한자 한자 발표한 위계폭력 경험담 중 일부이다. 현재를 사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창작자로 존재해야 마땅한 것인가 묻고 싶었다. 또 사업수행과 더 나은 결과물제출이라는 기존의 예술지원방식이 무엇을 놓치는지 말하고 싶었다.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창작환경 속에서 더는 아픈 경험담이 연극정신이라고 일컬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미 너무도 불균형한 지역문화예술계의 권력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어야 할까?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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