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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의병대장 김동신 의병장 제4회 추모제 엄수
삼남의병대장 김동신 의병장 제4회 추모제 엄수
  • 이재진
  • 승인 2020.10.25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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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항거해 덕유산과 지리산에서 맹활약을 펼친 삼남의병대장 김동신 의병장의 제4회 추모제가 25일 장수군 장계면 동명마을 묘역에서 엄수됐다.

이번 추모제는 (사)김동신추모사업회가 주최하고 장계면덕유회(회장 신복철) 주관으로 마련됐다.

이날 장정복 군의회 부의장과 덕유회 회원 및 장계면 지역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초헌관에 류지봉 장계면장, 아헌관에 장정복 군의회 부의장, 종헌관에 신복철 덕유회장이 봉헌 헌작했다.

류지봉 장계면장은 “김동신 의병장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본받고 호국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숭고한 뜻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자랑스러운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김동신 의병장은 1906년 최익현, 민종식과 함께 무주와 순창, 구례 등 전남북 일대에서 큰 활약을 펼쳐 ‘삼남의병대장’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내란죄로 종신유형을 선고받고 순국,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1908년 4월 6일, 그는 삼남의병대장으로서 8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경남 거창군 고제면 궁항리 매학 일대에서 일본 군경 합동토벌대 70여 명과 교전을 벌여 큰 타격을 입혔다. 오랜 지병이었던 복통과 항문 출혈이 심해 의진을 부장들에게 맡기고 고향으로 가서 치료하던 중 체포되고 말았다.

“너의 소행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일본 경찰의 심문에 “나라를 위해서는 무기를 가지고 행함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차후라도 이와 같이 할 줄로 생각한다”라고 당당히 답했던 그는 그해 8월 1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내란죄로 종신유배형을 받아 다년간 고초를 겪었다.

김동신 의병장은 영호남을 누빈 선구자적 의병장이었고, 삼남의병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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