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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은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데
생(生)은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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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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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호(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죽은 뒤에까지 의미로 남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말라” 미켈란젤로의 준엄한 훈도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살아서도 의미요, 사후에도 의미인 것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의미 있는 일이란 가치 있는 일일 터요, 크게는 인류를 위해서, 작게는 이웃이나 가족을 위해서 보람있게 공헌하는 일일 터이다. 태양이 하루의 난간에 걸릴 무렵에 스스로 무위도식(無爲徒食)했다고 반성될 떄 그 무위로 난파된 시간들에 대한 회한이 가슴을 칠 것이다. 소설에서도 주인공의 생애 중 가장 응축된 정채(精彩) 있는 부분만을 다룬다 하였는데, 바다의 파도만큼이나 굽이쳐 오는 온갖 사상(事象)이 의미 없이, 또는 가치 없이 명멸하여 인생을 덮쳐 지나가고 만다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무슨 보람된 것이며 무슨 존엄한 것이겠는가.

선종(禪宗)에서 수행하며 무념무상에 드는 면벽(面壁)하는 일도 무위도식으로 보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아침을 열며 귀한 시간을 명상한다면 이 또한 무의미의 일인가. 깊이 사유(思惟)에 골똘하며 침잠(沈潛)에 드는 일은 역시 무의미요, 무가치인가. 다만 그 수도와 그 사유로 연유하여 큰 철리(哲理)를 얻어 인류에게 인문학적 큰 업적을 남긴다면, 아니면 이로 말미암아 다음 날에 자신이 한층 고귀한 삶을 누리게 된다면, 수천 수만 번 연습으로 골프채를 휘둘러 골프왕 타이거 우즈에 이른다면 그 수도와 수련의 과정을 무위로 셈할 일은 아닌 성싶다. 그리고 또한 자기 성찰로, 자기 정신 도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기면 이것 역시 무의미의 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문학적 철학적 의미론을 부각시켜 갑론을박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으로서 마땅이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찾아 도모하고 시혜하는 일로 국한하는 협의의 일반적 의미론에 안주하고 싶다. 의미 있다, 의미 없다의 구분법은 인정물태(人情物態) 제반이 아니라 가시적 물상의 이룸에만 국한할 일은 물론 아닌 성싶다.

필자는 여기서 의미 유무를 근원적 본질에 입각해 생각하지 않고, 애초에 의미가 존재해 있었던 게 아니라 사람이 의미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는 창조적 의미론에 매달리고 싶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어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앟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라는 시구를 인용해 본다.

여기서 의미는 상징성을 띤다. 또한 의미란 내가 만들어 부여하는 것이란 암시를 품는다. ’우리의 만남은 큰 의의가 있었어‘ ’우리 모임은 유익한 의미가 있었어‘하고 언급했다면 사람들 일상의 만남도 의미의 창조가 아니겠는가. 자꾸자꾸 이토록 의미를 창조해 간다면 생은 빛나게 될 것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은 예술에서나 찾고, 현실의 유의미를 찾아 나서자.

꽃을 심으며, 음악을 감상하며, 독서하며,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며 하루를 묶어 내자. 가족끼리 정리를 쌓고 효도하며, 상추 심고 가꾸며 하루씩 유의미로 묶자. 그 하루하루들이 축적되어 빛나는 인생이 되리라. 이토록 참 의미를 쌓는 인생을 펄펄 휘날리자. /소재호(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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