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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시인의 '감성 터치'] 돌아간다는 것
[안성덕 시인의 '감성 터치'] 돌아간다는 것
  • 기고
  • 승인 2020.10.27 21: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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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팽나무, 사람주나무가 불붙기 시작했다. 그만 돌아가려는 거다. 불이문 지나 경내, 가을볕이 밭는다. 문수사 만세루 토방에 걸터앉는다. 대웅전 석축에 이끼가 푸르다. 세월이 저만치 청량산 너머로 멀어졌단 말씀이겠다. 문수전 뒤 비탈에 꽃무릇 몇 포기 시들고 있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운명을 거스르려는 듯이 서둘러 돌아가고 있는 저 꽃, 저 오기 전 다녀간 잎을 따라가고 있다. 꽃무릇, 돌아갈 때 더 눈에 들어오는 꽃이다.

왔던 건 가고야 마는 게 세상 정한 이치 아니랴. 용지천 감로수로 목을 축인 산새 한 마리 가을 속으로 사라진다. 물확 옆 수국 져버린 지 오래다. 범음각 앞 배롱나무꽃도 구 할 너머 돌아갔다. 이미 갈 때를 놓쳤다는 듯 서두르는 빛이 역력하다. 문수전 뒤 감나무가 매단 까치밥 붉다. 돌아가고 있는 것들이 바람 앞에 팔락대는 마지막 촛불보다 밝다. 돌아간다는 것, 다시 오겠다는 말 없는 언약이다. 문수사를 뒤에 둔다. 잉걸불 저 꽃무릇이 재가 되어 다시 올 잎이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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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갈 때 2020-10-29 15:21:39
'후둑 후두둑, 툭 톡' 가을이 떨어지네요
노랑 은행잎, 빨간 단풍잎, 주황 연두빛 벚나무잎
시몬을 부를 만큼 나뭇잎은 떨어지고 날리며
마음 속 파동을 그려줍니다
딱새가 꾸찌뽕 나무사이로
날아다니며 만찬을 즐기고,
곤줄박이는 낙상홍나무에 앉아
삐삐 노래 유창하게 불러 주고,
산국은 노란 국화향기 푸푸 품어대는
파랗고 파란 하늘 아래 얼마나 어머나
좋은 가을인지요 즐거움인지요

돌아가기 위해서 그런건가요
아름다운 색으로 제몸 물들이고
미소 한 다발, 그리운 기억 한 움큼
선사한 다음, 바람처럼 떠나는건가요
사라지는게 아니겠지요
침묵으로 머물러 있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