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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기업 탐방] ⑦작지만 기술로 승부한다 ‘삼일산업’
[향토기업 탐방] ⑦작지만 기술로 승부한다 ‘삼일산업’
  • 강인
  • 승인 2020.10.27 2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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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팔복동에서 열교환기 생산하는 삼일산업
파격적 단가 낮춘 제품 만들어 특허, 세계시장에서 기웃
조형석 대표 “100년 가는 기업 만들겠다” 포부
삼일산업 3공장 전경
삼일산업 3공장 전경

전주시 팔복동에 오직 기술로 세계시장에서 승부하는 기업이 있다. 산업체와 생활시스템 전반에 활용되는 열교환기를 생산하는 ‘삼일산업’이다.

자본 수조 원에 달하는 외국 대기업과 경쟁하는 삼일산업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오직 기술 개발에 전념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다수의 특허를 가지고 생산단가를 파격적으로 낮춰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업체다.

삼일산업은 1987년 조형석 대표가 설립했다. 경기 안양에서 활동하던 조 대표는 2006년 주거래처를 쫓아 회사를 전주로 이전했다. 현재는 국내외 여러 기업으로 거래처가 다양해졌지만 전주 팔복동에 생산공장을 3곳으로 늘린 온전한 지역업체다.

삼일산업 특허 제품
삼일산업 특허 제품

삼일산업은 용접식 판형열교환기에 있어 세계 최대 용량을 생산하는 전문 제조 기업으로 직원수 40여 명, 연매출 70억 원에 달한다. 일반적인 용접식 판형열교환기는 대부분 브레이징 판형열교환기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고온·고압에 의해 열변형과 열응력에 의한 크랙에 취약하다. 대형 용량 열교환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상태다. 열변형과 열응력에 의한 크랙을 완전히 제거하는 자동용접 제조방식을 적용해 고온·고압에 적용 가능하고, 사용 환경과 용량의 한계가 없는 새로운 신제품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노리고 있다.

특히 내압성이 향상된 용접된 판형 열교환기 국내 특허, 판형 열교환기 전열판 적층 장치 특허, 판형 열환기용 전열판과 이 전열판의 제조 적층장치 및 방법 특허, 다수의 용접식 판형열교환기 특허는 기술을 중시하는 삼일산업의 자랑이다.

이에 고용노동부장관상, 지식경제부장관상, 전북도지사상, 우수중소기업인상 등을 수상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연구개발과 활동을 바탕으로 국내외 대기업과 계약을 맺고 제품을 납품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삼일산업이 현재의 안정을 찾기까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도 홍보기회와 판로를 찾지 못해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조 대표는 “죽을 뻔했다. 수십억 원을 들여 8년 만에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고, 다른 업체들의 찬사도 받았는데 판매가 되지 않아 고사 위기를 겪었다. 해외시장 홍보관 운영을 위해 돈을 빌리려고 여러 곳에 문을 두드렸지만 작은 회사여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어려운 시기를 떠올렸다.

조 대표는 해외 선진시장을 견학하기 위해 한 일본 업체를 방문했다. 우연히 열교환기 제품을 봤는데 벤치마킹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제품 개발이 시작됐다.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40억 원을 투자한 새로운 제품은 2008년 나왔고 특허까지 받았다.

조 대표가 견학했던 일본 업체 관계자는 산일산업이 개발한 제품을 보고 “우리는 15년을 개발하고도 결국 포기했는데, 어떻게 제품 개발에 성공했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좋은 제품을 완성했으니 판매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또 쉽지 않았다. 해외시장에 선보이려면 현지에 전시장을 만들어야 하고, 제품도 옮겨야 하는데 이런 비용들도 중소기업에는 적잖은 부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과 일본에 전시장을 확보해 제품을 내보이자 업계 관계자와 바이어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사진기와 캠코더로 제품 구석구석을 찍어 대는 통에 나중에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촬영을 금지할 정도였다.

삼일산업 생산공장(위), 삼일산업 실험 설비(아래)
삼일산업 생산공장(위), 삼일산업 실험 설비(아래)

문제는 엄청난 업계의 관심에도 구입 주문이 없었다는 것이다. 작은 기업이라 제품 납품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기계업계는 경영이 보수적이다. 구성품이 하나라도 바뀌면 생산설비를 개선해야 한다.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데 납품 업체가 제때 물건을 납품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삼일산업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외국 바이어들이 원하는 제품 성능 데이터 값을 보여줘야 한다. 실험을 위해 실험실을 구축하는데 추가로 5억 원이 더 필요했다. 제품 개발에 모든 가용 자원을 쏟아 부은 삼일산업은 여력이 없었다. 금융권과 기술보증재단에 문들 두드렸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조 대표는 우수한 제품을 만들고도 판매를 위한 과정이 순탄치 않아 답답했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파산한다는 압박도 컸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전북은행이다. 당시 대출 담당자는 이틀에 한 번 삼일산업을 찾아 현장을 점검했다. 우수한 제품을 믿고 대출 실행을 결정했지만 사실 불안했던 것이다.

조 대표는 “전북은행이 우리 회사를 살려줬다. 정말 고마운 인연이다. 지역기업과 은행이 손을 잡아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힘이 들 때는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는 기관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지만 깨어 있는 분들이 있어 다행이었다”고 회상했다.

삼일산업은 안정기에 접어들자 곧장 주민센터를 찾았다. 팔복동에 거주하는 어려운 가정의 청소년 3명을 추천 받아 후원을 시작했다. 작은 도움이지만 자신의 용돈만 있어도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다.

조형석 대표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회사 브랜드 아직 없어 거래가 작지만 자랑스럽다.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와 미국 대기업에서 회사 매각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거절했다. 작게 가도 오래가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조형석 삼일산업 대표 “100년이 가는 지역업체 만들겠다”

조형석 삼일산업 대표
조형석 삼일산업 대표

부산 출신인 조형석(60) 삼일산업 대표는 전주에서 삼일산업을 일궜다. 처음에는 우연히 인연이 됐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지역 현안을 걱정하는 지역 기업가가 됐다.

수도권 한 기업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당시 상황을 정리하던 모습을 보고 채권자들이 사업을 권유했다. 기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무모할 정도로 단순한 계기로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에 이르렀다.

그는 “사업을 하며 고비가 수십 번 있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 돌아보니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도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경쟁업체들이 가격(경쟁)으로 계속 쫓아오고 있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조 대표는 “한 번은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한 달 간 받았다. 세금 누락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왔다. 오히려 세무공무원이 우리 회사를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는 말고 기업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른 지역 기업인을 만나면 전북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고 말하고 다닌다. (삼일산업이) 서울이나 경기도에 있다면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전북은 기업 찾아다니면서 지원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증기관들이 전향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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