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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전주세계소리축제 “현 위의 노래”
2020 전주세계소리축제 “현 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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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2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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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미 주일한국문화원 기획조정부장
최병미 주일한국문화원 기획조정부장

도쿄에 산다는 이유로, 가을은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은 못 가봤지만 언젠가 꼭 참여해보고 싶었던 전주세계소리축제. 그런 축제를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생방송으로 만나게 되었다. 행사의 온라인 개최는 어려운 결정이었겠지만 ‘with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틀’을 구축해야하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20여년 오프라인 개최 실적과 더불어 이번에 얻은 축제의 디지털 운영능력은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소리축제로서 자리매김해 가는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올해 축제는 현악기의 매력을 집중 조명하는 무대로 기획되어 5일간 5편의 공연이 개최되었고, 둘째 날 열린 “현 위의 노래”는 그중 백미였다. ‘현’을 매개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원숙미와 신선미, 기악과 성악 등 대립되는 두 개념들이 실은 ‘현’위에서 연결되어진 하나라는 것을 소리는 물론 영상을 통해 인상 깊게 전달했다. 첫 무대 ‘줄타기 시나위’부터 관객을 몰입시켰다. 명인의 아쟁과 명창의 소리는 같은 공간 줄 위의 줄타기 명인과 하나가 된다. ‘줄이 현이고, 현이 곧 줄이다.’ 줄을 타는 박회승의 몸짓과 아쟁을 타는 김영길의 활과 운지가 중첩되며 ‘현 위의 노래’라는 제목을 극명하게 각인시킨 매력적인 시도였다.

10대의 가야금과 12대의 첼로가 협연한 두 번째 무대 ‘산조와 바흐’는 공생과 화합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한 무대였다. 작곡가 지성호는 이 곡을 편곡함에 있어 전통 12현 가야금으로 산조는 산조대로 그리고 첼로는 첼로 그대로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을 연주하며 자신들의 고유성을 표현하면서도,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가 방해되지 않는 큰 의미의 융합된 하모니를 만들었다. 형태와 방식에 구애되지 않고, 흥과 감동으로 조화된 무대였다.

가야금 하수연과 거문고 장서연이 연주한 「탈(TAL)」 은 즐거운 반전이다. 우리 민족의 현악기을 대표하는 두 악기가 고구려와 가야의 언어가 아니라 현대어로 ‘탈’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듯하다. 문득 첼리스트 요요마가 연주하는 ‘리베르 탱고’를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는 자유스럽고 보편적인 가치를 우리에게 전달하려 했다. 그룹 ‘달음’의 연주에서도 그 모습을 보았다.

유종의 미를 장식한 공연은 ‘더블 시나위’. 각 악기가 2부로 편성되고, 판소리 합창까지 더해져 기악과 성악으로 국악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빛깔의 소리들을 뿜어내었다. 악사들 구성은 화려했다. 열정적으로 활약하며 한껏 물이 오른 예술가 10인의 기량을 한 무대에서 보는 호사를 누린다. 정준호의 소리북은 어깨춤을 추게 하고, 이창선의 대금청은 애간장을 녹인다. 십인십색 희노애락의 감정을 자극한다. 이 연주와 함께 선 굵은 방수미의 소리가 마치 살풀이를 추듯 치유와 위안의 소리를 풀어낸다. 악사와 소리꾼이 혼을 태우듯 빚어낸 소리는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증폭되었고, 이윽고 모든 것을 남김없이 하얗게 태우고 막을 내렸다.

공연이 끝났다. 어려운 시기에 귀한 행사를 보게 되니 오랜만에 지식이 아닌 감성으로 공연을 즐겼다. 참여하신 예술가와 조직위 및 관계자분들께 이 글을 통해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현악기의 모습에서 지혜로운 이의 모습을 본다. 높은 음의 상대를 만나면 현을 조여 음을 올리고, 낮은 음의 상대를 만나면 현을 풀어 자신을 낮춘다. 어느 악기와도 어느 소리와도 소통하는 ‘현’.

다음에 한국 갈 때는 경기전 앞에서 막걸리 한잔 해야겠다. /최병미 주일한국문화원 기획조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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