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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원의 '미술 인문학'] 장 미쉘 바스키아
[정석원의 '미술 인문학'] 장 미쉘 바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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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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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쉘 바스키아 ‘뉴욕, 뉴욕’, 1981
장 미쉘 바스키아 ‘뉴욕, 뉴욕’, 1981

장 미쉘 바스키아의 전시가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바스키아는 80년대 뉴욕의 거리에서 낙서화가로 등장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후에는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던 인물로 아쉽게 28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거리의 반항아였고, 언더그라운드 예술을 대표하며, 흑인 특유의 강렬한 표현력을 발휘했던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초기에 신표현주의 흐름의 대표 작가이기도 했다. 동시대에 낙서화가로서 쌍벽을 이뤘던 키이쓰 해링이 백인으로서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로 사랑을 받았다면 바스키아는 시종일관 반항적인 몸짓과 강렬한 색채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번 바스키아 전시는 150여점의 본격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80년대에 뜨거웠던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1988년 병으로 그가 죽은 후 1992년 10월 23일부터 이듬해 2월 14일까지 열렸던 휘트니미술관에서의 바스키아 회고전은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15세에 가출하여 거리를 떠돌다가 아버지에게 발견되어 집에 가던 그가 외쳤던, ‘아빠, 나는 어느 날 반드시 유명해질거야!’라는 말은 실현되었다. 그의 사후 뉴욕지에서는 특집을 내고 평하기를, ‘바스키아는 불꽃처럼 살았다. 그는 진정으로 밝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불꽃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불씨는 아직도 뜨겁게 남아있다.’고 썼다.

170여 인종이 모여 산다는 뉴욕의 코스모폴리턴적 문화와 함께 제도적 문화에 반발하며 자유롭고 저항적인 문화를 제기했던 언더그라운드는 도시적 삶의 인간이 어떻게 예술적으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제도에 길들여져 안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개별적 삶의 가치를 표현하면서 그 영역을 넓혀가려는 도시민들의 문화적 각성이 읽혀진다. 민주주의를 영위하는 전 세계 도시인들의 번민과 각성이 함께 담겨있다. 우리는 죽을 때가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번민하면서 살게 되는 소시민들이다.

장 미쉘 바스키아(1960-1988). 뉴욕 거리의 낙서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내어 세계적인 예술가로 촉망을 받았으나 28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장 미쉘 바스키아(1960-1988). 뉴욕 거리의 낙서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내어 세계적인 예술가로 촉망을 받았으나 28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바스키아는 분명 예술계의 이단아였고, 제도권 바깥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는 현대미술의 문맥에서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우뚝 서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흔히 예술은 금액으로 평가되지만, 그는 시장에서도 예술적 광기에서도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다. 우리는 정직하게 그 꺼진 불씨에서 타오르는 불씨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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