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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의 도닥도닥] 가인과 손자의 정치적 실험
[김원용의 도닥도닥] 가인과 손자의 정치적 실험
  • 김원용
  • 승인 2020.11.1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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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김원용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가인 김병로(1887~1964) 선생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해쳐나갔던 거인으로 평가받는다. 일제강점기 항일 활동과 초대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가인이 남긴 업적은 열거하기 힘들 만큼 넓고 높다.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 거처할 곳 없는,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의 뜻으로 사용한 호 가인((街人)이 그의 생각과 사상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7년간 초대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사법의 기초를 놓고 사법권의 독립과 권위를 수립하는 데 절대적 공헌을 했다.

항일 활동과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족적이 워낙 큰 때문인지 가인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가인 스스로도 정치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었다. 그는 “인도를 무시하고 정의에 패려하는 행동을 다반사로 알고 행하는 그 죄악상을 엄숙하게 생각할 때 결국 정치는 죄악이라는 단안을 내리게 됐다. 우리나라가 독립될 경우를 상상하면서도 나로서는 무엇이든지 권력이니 지위나 공리로 투쟁하는 정치적 각축장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상당히 굳게 가졌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인은 현실정치에 직간접적으로 깊숙이 관여했다. 광복 직후 한국민주당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정에 반대하는 활동, 고향 순창에서 국회의원 출마, 야당 통합의 선봉 역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정치적 활동 대부분은 그가 의도했던 성과로 연결되지 못했다. 한민당 창당에 관여했으나 한민당이 토지개혁에 미온적이어서 결별을 했다. 박정희 군정에 대항하기 위해 `국민의당`으로 단일 야당 창당에 나서 대표를 맡았으나 끝내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순창에서 국회의원 낙선은 가인에게 큰 낙담을 안겨줬을 것 같다. 재야민주인사로 중앙 정치무대에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만큼 입지가 단단했던 그가 당시 정치 신인(홍영기)에게 패했기 때문이다. 가인은 마지막으로 고향 심부름이라도 하고 싶어서라고 출마변을 밝혔다. 4.19 직후 올바른 정치하라고 학생들과 국민들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정치는 깨끗한 사람, 올바른 사람, 민주주의 정신에 투철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그러나 무소속의 가인은 당시 전국적으로 분 민주당 바람을 뚫지 못했다.

가인의 정치실험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으나 그의 지향점이 오늘의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는 양지를 찾지 않았다. 자리가 아닌, 항상 민주화와 정치발전을 위해 필요로 하는 곳에 섰다. 대통령 후보 자리도 사양할 만큼 자신이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가 아닌, 씨를 뿌리는 데 온통 관심을 가졌던 게 정치인으로서 가인이었다.

가인의 이런 정신과 활동이 손자인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여러 정당을 넘나들면서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이 그 하나다. 세 차례나 위기에 처한 정당의 비대위원으로 나선 것도 열매 대신 씨를 뿌리겠다는 나름의 선의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 중 가장 주목되는 게 호남껴안기다. 김 위원장은 정당 바람에 힘을 쓰지 못했던 조부의 순창 선거를 가까이서 지켜봤을 터다. 물론, 현재 몸담은 국민의힘이 호남의 지지 없이 정권교체에 한계에 있다는 게 현실적인 이유겠지만.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 서진정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정치적 폐단이 특정 정당의 독주에 있었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야당의 서진정책을 무작정 속보이는 행태라고 비난할 문제가 아니다. 당장의 이해관계가 아닌, 미래의 한국정치와 전북정치를 위해서도 정당간 경쟁체제는 꼭 필요하다. 김 위원장의 정치적 실험이 성공하길 바라는 이유다. /김원용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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