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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7)가을 부안의 대하(大蝦)와 젓갈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7)가을 부안의 대하(大蝦)와 젓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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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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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고지도와 대하, 어선 풍속도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부안 고지도와 대하, 어선 풍속도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바다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 돛 달아라 돛 달아라 / 아득히 넓고 맑은 파도에 실컷 즐겨나 보자 /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 인간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구나.”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중 가을 편의 구절이다. 늦가을 살이 오른 물고기를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는 선조들의 정취를 떠올리니 코로나로 인해 지역의 명소에서 즐기지 못했던 제철 음식들이 아쉽기만 하다.

가을철 음식으로는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가 유명하다. 그 고소한 맛에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 하지만, 흔히 왕새우라 불리는 대하(大蝦) 역시 가을철 전어 못지않게 사랑을 받는 수산물이다. 예로부터 귀한 음식으로 취급한 대하를 중국에서는 긴 수염에 등이 굽은 모습이 노인을 닮았다 하여 바다의 노인 ‘해로(海老)’라 불렀지만, 중국의 고전 의학서인 『본초강목』에서는 양기를 왕성하게 하는 식품으로 소개했다. 별칭인 바다의 노인과 달리 새우는 십 만개 이상의 알을 낳는 왕성한 번식력을 갖고 있어 기력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총각은 새우를 먹지도 말고 홀로 여행할 때 여행지에서 새우를 먹지 말라고도 했지만, 새우는 많은 이들이 즐긴 음식이다. 조선의 미식가 허균(1569-1618)은 부안에서 나는 대하를 특별히 좋아했다. 그가 유배지에서 투덜거리며 쓴 편지에 “새우도 부안만 못하고, 게도 벽제 것만 못합니다. 먹는 것만 탐하는 사람으로서는 굶어서 죽겠네요”라고 했을 정도였다. 스스로가 먹는 것만 탐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그는 지금의 익산 함열에 귀양 와서는 이전에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에 ‘대하의 알로 젓갈을 담으면 매우 맛이 좋다’며 별미 리스트를 남길 정도였다.

 

새우젓과 곰소젓갈
새우젓과 곰소젓갈

대하 알젓은 지금도 구하기 힘든데, 당시에는 허균이 입맛을 다시며 썼던 책에서나 접하고 맛보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또한,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1758-1816)도 유배지 흑산도에서 수산생물을 관찰하고 수산학 총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했는데, 대하 맛이 매우 달콤하다고 극찬했다. “길이는 한 자 남짓 되고 빛깔은 희고 붉다. 등은 구부러지고 몸에는 껍질이 있다. 꼬리는 넓고 머리는 돌게를 닮았고 눈은 튀어나와 있으며 두 개의 붉은 수염이 있다. 수염의 길이는 그 몸의 세 배나 된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유중림(1705-1771)은 『증보산림경제』에서 대하를 쪄 볕에 말려 겨울에 두고 먹는다고 했으며,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대하를 조기, 오징어, 청어, 게, 굴 등과 더불어 전라도 부안현의 특산품으로 소개했다. 서유구(1764-1845)는 『난호어목지』에 “우리나라 동해에는 새우가 없다. 대하는 회로 먹어도 좋고 국으로도 좋고, 그대로 말려 안주로 해도 좋다”고 했으며, 서해에서 나오는 새우를 젓갈로 담가 전국에서 널리 먹는다는 기록을 남겼다.

주로 서해안에서 잡히는 대하와 여러 종류의 새우는 지역에 따라 모양새나 품질도 다르고 불리는 이름도 다르다. 새우는 김장철 김치의 풍미를 내는 젓갈로도 쓰임이 큰데, 담그는 시기에 따라 오월에 담그면 오젓, 유월에 담그면 육젓, 가을엔 추젓, 겨울엔 동백하젓으로 부른다. 젓갈로 이름난 곳으로는 강경과 인천 소래포구를 들기도 하지만, 부안 곰소의 젓갈도 유명하다.

젓갈은 어패류에 소금을 첨가하여 발효시켜 감칠맛이 나게 한 음식으로 고대 중국에서도 발달한 특유의 저장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유래는 삼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젓갈을 일컫는 ‘해(醢)’가 신라 신문왕 3년 신문왕의 왕비를 맞이하는 폐백용 궁중음식에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었으며, 고려 시대에 들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기는 음식’으로 대중화되었다고 『고려도경』에 남아 있다.

 

곰소염전과 소금창고
곰소염전과 소금창고

조선 시대에는 계절과 지역에 따라 여러 원료를 사용하여 소금에 절이고, 술에 기름과 산초를 섞어 담그고, 누룩과 엿기름 찹쌀밥 등을 소금에 섞어서 만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젓갈을 담갔다고 한다. 또한, 미리 소금과 젓갈을 담글 독을 어선에 싣고 나가 새우가 잡히는 대로 배 위에서 젓갈을 담갔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런 까닭에 수산물이 많이 나고 염전이 있는 곳은 젓갈의 생산지로 각광 받았고, 서해안을 끼고 있는 부안군과 고창군의 경계에 자리한 곰소만은 조선 시대부터 어업과 염전이 성한 곳으로 다양한 수산물과 소금을 사용하여 양질의 젓갈을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갯벌이 발달한 곰소만의 안쪽 깊숙이 위치한 줄포는 과거에는 활발했던 어항으로 그 이름을 따서 줄포만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갯벌이 일부 매립되면서 어선의 출입이 어려워지자 쇠락하게 되었다. 이후 북쪽 해안에 위치한 곰소가 대표 어항이 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에 들어 염전이 줄었다. 그러다 최근 갯벌이 살아나고 곰소를 중심으로 젓갈 생산에 필요한 소금이 주변 염전에서 다시 생산되고 젓갈 판매가 활발해지자 곰소젓갈식품센터가 생겼고 젓갈축제도 열리게 되었다. 게다가 넓게 펼쳐진 염전의 풍경이 특별한 정취를 자아내자 사진 찍기 좋은 명소가 되었다.

구울수록 붉어지는 대하는 가을 단풍이 물들어 가는 모습과도 닮았다. 아직은 겨울에 들지 않았으니 허균이 그리워했던 부안의 대하를 먹기에 늦지 않았다. 또한, 김장을 앞두고 있으니 김치의 맛을 돋우는 새우젓을 비롯한 다양한 젓갈을 구하러 부안을 찾아도 좋겠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서해안 어느 바닷가에서 허균이 별미 리스트에 올렸던 대하 알젓을 맛보는 행운을 만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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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0-11-19 16:55:28
순환근무로 남도에 2년간 근무시 젓갈을 가끔 접했는데 귀경 후에는 마트에서 청란젓갈이나 오징어젓갈정도 사먹고 뜸한 편이다. 휴가철에 곰소를 지나며 젓갈정식을 주문했는데 다양한 젓갈이 일품이었지만 얼마전부터 고혈압약을 복용중이라 좀 짠게 신경이 쓰였다. 뜨거운 밥에 젓갈을 넣고 비벼 먹는 것도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