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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0) 서리꽃이 피었다지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0) 서리꽃이 피었다지
  • 기고
  • 승인 2020.12.30 20: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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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바래봉. /사진=남원시청
지리산 바래봉. /사진=남원시청

눈이 내렸다. 나뭇가지에 눈꽃이 피어난 것을 보니, 상고대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으로 마음이 달려간다. 이즈음 보이는 상고대는 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해 준다. 상고대는 겨울철 안개가 짙게 낀 산이나 물가에 주로 발생하는데 안개(霧)가 얼음(氷)이 되었다고 해서 ‘무빙(霧氷)’이라 하고, 나무(樹)에 생긴 서리(霜)라 하여 ‘수상(樹霜)’이라고도 불리는 ‘나무서리’이자 ‘서리꽃’이다.

활짝 핀 서리꽃은 새벽의 여명 속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고 햇볕을 쬐면 스르르 사라진다. 하지만, 옥정호의 물안개와 더불어 피어나는 환상적인 모습과 지리산 바래봉에서 피어난 서리꽃을 보면 그 신비한 모습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다. 이제는 그 찰나의 시간에 맞추어 가서 마주하며 그 아름다운 서리꽃의 향연을 맘껏 즐길 여력이 없어졌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고 오랫동안 풍습으로 즐겼던 모든 정겨움들이 코로나19 로 아득해졌다.

옥정호의 상고대 /사진=임실군
옥정호의 상고대 /사진=임실군

2020년 벽두부터 들이닥친 전염병이 우리에게서 찬란한 봄을 앗아가더니 지루했던 장마로 기억되는 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도 끝나지 않았다. 이전에 당연하게 누렸던 것과 그동안 일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누리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고 일상일 수 없게 되었다. 온종일 ‘코로나19’ 관련 뉴스에 마음을 졸이는데 변종까지 등장하여 더 큰 두려움을 몰고 온 전염병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지금의 우리가 겪는 이 시간은 훗날 어떻게 기록이 될까. 우리에게 전염병의 기록은 백제 온조왕 때 ‘역병이 유행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시작으로 고려 때 역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환자를 격리하고 의서를 편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기의 여러 문헌에도 당시 전염병이 들끓었던 상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벽온(壁溫)이라 불린 예방법과 치료 흔적들이 남아있다. 시대는 다르지만 복기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상황과 대처 방법이 비슷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한 사람에 있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1393년 태조가 창건한 회암사에 전염병이 있었다는 기록과 도성을 쌓기 위해 소집한 인부들 사이에 전염병이 크게 유행했다는 것을 시작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전염병에 관한 기록이 많다. 전염병이 돌은 팔도의 구체적인 상황과 죽은 사람의 숫자 등이 자세히 나와 있으며 ‘그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 더하다’고 표현하는 등 전쟁보다 전염병이 무섭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나라에서는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하여 음식과 약을 보내고 의관들을 파견했으며, 하늘의 노여움을 피하려고 여제를 지내고 백성을 구휼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만들었다. 방역에 취약한 감옥의 상황을 염려하여 문을 열어 환기와 청소를 하고, 밀폐되고 협소한 감옥에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석방했다.

구제와 치료를 담당하는 관청에서는 전염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모아놓은 의서인 『간이벽온방』 등을 발간하여 지침서를 만들었고 민간의 치료에 헌신해 존경을 받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조선 시대 최고 명의로 알려진 허준(1539-1615년)도 두창(천연두)이 유행할 때, 수많은 백성과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을 두창으로부터 완치시키고 조선 시대 최고의 명의로 유명해졌다.

선조는 왕자의 병을 고쳐준 허준에게 서얼 출신이라고 벼슬 내리는 것을 반대하는 대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에게 정3품 당상관 통정대부라는 품계를 내렸고, 훗날 그는 종1품 숭록대부의 벼슬에 올랐다. 또한, 왕명으로 천연두 예방과 치료에 관한 의학서인 『언해두창집요』를 집필하게 했으며, 허준은 잘 알려진 『동의보감』 외에 한글 번역이 덧붙여진 민간 응급용 책자인 『언해구급방』과 1613년 성홍열 등의 전염병이 유행하자 『번역신방』과 『신찬벽온방』 등 많은 의학서를 저술했다.

허준영정과 『언해두창집요』 /사진=허준박물관
허준영정과 『언해두창집요』 /사진=허준박물관

허준은 임진왜란 등 외부로부터 침략을 겪을 때마다 조선에 흘러들어온 전염병에 관심을 두고 연구했으며, 입과 코를 통하여 몸 안으로 전염병이 침입한다고 여겼다. 조선 최고의 예방 지침이 담긴 의서인 허준의 『신찬벽온방』에는 의원이 환자를 상대할 때 반드시 뒤로 등지도록 하여 직접적인 전염을 막는 방법과 치료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온역을 막는 붉은 약인 ‘벽온단’을 사용했는데, 사기를 제거하는 용도로 설날 새벽에 복용하거나 태워서 사용했다. 불에 태웠던 이유는 사악한 전염병의 기운이 코를 통해 전염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벽온단의 기원은 고려 문인 이규보(1168-1241년)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벽온단으로 온역 피함도 헛말이지만 / 술 마시기 위해 짐짓 사양하지 않았노라 / 닭도 울기 전에 이불 쓰고 앉아서 / 신단을 먹기 위해 술을 마시네”라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 시대 궁의 세시풍속에도 임금이 새해 첫날 국가의 평안과 백성의 건강을 기원하며 벽온단을 불태웠다고 알려져 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2020년은 참으로 고단한 한해였다. 이 시간 가장 마음 깊이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의 안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의료인들과 관련 종사자들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과 소명으로 환자들 곁을 지키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헌신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2021년 새해에도 스스로를 지키고 서로를 지켜주며 인내하고는 서리꽃이 사그라진 자리에 푸르게 돋아나는 봄의 향연을 온전하게 맞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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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0-12-31 14:09:40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은 상존했군요. 지금은 의학술이 발전하여 그나마 통제를 하지만 수백년 전에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네요. 당시 생활수준에서 예방을 제대로 했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허준 같은 특출한 사람이 있었기에 전염병에 대해 연구도 하고 책으로 기술하여 후세에 남기기도 하여 기여하지 않았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