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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1) 완주 양곡창고의 삼삼한 변신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1) 완주 양곡창고의 삼삼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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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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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문화예술촌
삼례문화예술촌

완주가 법정 ‘문화도시’가 되었다. 그 소식에 코로나로 힘들고 매서운 날씨 속에서도 완주 군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희망찬 새해를 맞았다. 문화도시는 지역의 특색있는 문화자원을 활용해 문화생태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5년간 100억의 예산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인구 9만의 작은 도시가 기적을 이루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전국 지자체 가운데 군 단위로는 처음이자 호남에서 유일하게 완주가 선정된 데에는 나름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

단시간에 이루어진 쾌거라기보다는 그동안 ‘공동체 문화의 비전’을 바탕으로 주민들과 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기반을 다지고 노력해온 결과였다. 문화의 색을 확연하게 드러낸 지역이 아니지만, 완주는 이미 로컬푸드로 전국적인 명성이 자자했으며 문화로 도시재생을 한 선진지로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그 중심에는 수탈의 아픔을 지닌 장소를 문화가 깃든 장소로 승화시킨 일제 강점기 ‘양곡창고’, ‘삼례문화예술촌’이 있다.

양곡창고 당시 내부와 외부 /사진=완주군청
양곡창고 당시 내부와 외부 /사진=완주군청

일제 강점기 삼례에 큰 규모의 양곡창고가 있던 것에는 지리적인 요인이 컸다. 만경강을 끼고 있는 삼례는 김제 익산과 더불어 만경평야를 품고 있는 곳이자 과거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로, 1892년에 동학교도들이 ‘삼례집회’를 열어 동학농민혁명의 불씨를 지피고, 1894년 제2차 동학농민혁명의 봉기를 일으킨 주 무대로 농민들의 뜨거운 힘이 서린 곳이다. 반면,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일제 강점기 수탈 물자 수송의 중심지가 되기 매우 적합한 곳이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개항되자 일제는 본격적으로 수탈을 감행했다. 1920년에는 산미증식계획을 밀어붙여 호남지방의 질 좋은 양곡을 군산과 목포의 항구를 통해 수탈해 갔다. 삼례역에서 출발하는 화물열차와 서해만조 때 만경강까지 올라오던 배로도 지역에서 나오는 쌀 대부분을 걷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했다.

한편, 삼례에 양곡을 보관할 대형 창고가 필요해지자 일본인 농장주들이 만든 농업회사인 이엽사(二葉社)가 그 일을 맡아 진행했다. 1926년 일본인 대지주 시라세이(白勢春三)의 이엽사 농장 창고가 현재 삼례문화예술촌이 있는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완주지방 대지주 농장이었던 조선농장, 전북농장, 공축농원과 더불어 양곡 수탈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삼례는 농업을 주산업으로 삼아 성장했고 물산과 사람들이 몰려드는 전성기를 보냈다. 점차 경제환경이 바뀌고 주변 지역의 개발 사업으로 삼례의 중심지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 인근 전주로 인구가 유출되었고, 삼례역 역시 전라선 복선화 사업으로 옮겨가면서 과거 양곡창고였던 공간들도 그 기능을 점차 잃었다.

창고는 해방 후 적산(敵産, 적의 재산) 건축물로 분류되어 국가에 귀속된 후, 농협으로 넘어가 2010년까지 양곡창고의 기능을 유지했다. 완주군은 농협의 소유였던 창고를 매입한 후 이 공간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함과 동시에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2013년 양곡창고와 관사였던 공간은 ‘삼례문화예술촌(삼삼예예미미)’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리모델링 전과 후
리모델링 전과 후

1만1825㎡ 부지에 1920년대에 지어진 창고 5개 동과 1970~80년대에 건축한 창고건물 등 모두 7개 동이 책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보듬어졌다. 세월의 흔적을 품은 건물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역사의 맥락을 잇고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에 삼례문화예술촌의 창고건물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등록문화재 제580호’로 지정되었다. 시간을 이어 역사를 기억하는 현장이자 모두가 향유 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제, 삼례문화예술촌은 문화의 보물창고로 변신에 성공하여 완주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필수 관광지가 되었다. 문화를 기반으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이끌며 주민들 스스로 예술과 문화를 생산해 나갈 수 있는 장을 만든 것이다. 주민들이 합심하여 완주를 로컬푸드의 중심지로 만든 것처럼, 완주는 완주만의 문화생태계를 형성하여 특별한 문화도시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의 힘이 3.1운동에 영향을 주고 그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듯이, 역사의 흔적과 주민들의 삶이 깃든 삼례의 양곡창고가 문화 발전의 디딤돌이 되어 완주의 곳곳이 행복한 문화공동체 도시로 꽃피워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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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1-01-15 07:34:49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소도시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완주, 법정문화도시 완주를 언젠가 찾아보고 싶군요. 호남지방에도 적산건물이 목포, 군산 등에 일부 남아 있는데 어떻게 활용하고 보존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많은데 완주는 지방 중소도시지만 민관이 합심하여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결과물처럼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