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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김헌수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김헌수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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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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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요즘 무슨 색깔로 사시나요? 함박눈의 색조를 따라가려는 폭설같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저는 오늘 김헌수 시인의 소묘를 흉내 내 보려 해요. 점이 선이 되고, 면적이 되고, 공간이 되고, 삶이 되는 세계는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요. “별들이 무한하게 자랄 때까지 그들이 찬란해질 때까지 초승달로 문고리를 달아 놓”고, 시인의 “별빛을 눈썹에 받아내겠어요”(‘유월 하늘에 뜨는 별은’ 중).

시인의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를 읽기 전까지 ‘정체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작고 하얀 질문들을 점묘법처럼 당신 마음에 찍어보려 해요. 나는 누구야? 어디로 가고 있어?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어떻게 적응하지? 나를 바꾸는 편인가, 주위를 변화시키는 편인가, 경계가 어정쩡한가? “커튼콜이 드리워진 밤에는/ 특별한 목소리를 포박해 둘 거야”(‘벨칸토 음악회를 보고 온 날에는’ 중). 내 삶이 끝난 후 나의 특이한 무늬를 다시 불러낼 환호성은 있을까?

“불안은 꽃 피지 말고/ 같이 살아보자고 몸부림만 치고 있어”(‘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하루’ 중). 내 멋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리모컨’뿐인 날들이 있지요. “거칠어진 선이 그어진 결핍에서 멀어지고 싶”(‘어반스케치’ 중)은 시절이 있지요. 우리는 모두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컬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빛을 받으면 자신만의 독특한 색상을 내뿜어요. 불안이 없을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편안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이여! 피어나지 말고 더불어 뿌리로 살아봅시다. “숲을 걷다가 씻어내지 못한 얼룩에 갇”(‘결벽증’ 중)힌 사람아! 천연색 지닌 숲을 닦아 유리창에 신겨보게요. “발바닥이 튼튼해서 신발을 신지 않는”(‘피핀과 메리와 나는’ 중) 모두는 “휘파람을 불 때까지 살아보자”요(‘버베나 꽃잎은 접어지고’ 중).

누구나 본질을 떨치어 드러내고 싶은 발달 욕구를 가지고 있어요. “저수지 속에서 반짝이는 어제를/ 서늘하게 헹구고”(‘경천저수지에서’ 중) 싶어 하지요. 발달은 발이 달렸어요. 돌아보면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술래를 향해 항상 움직이는 게 ‘참된 본디의 형체’라고 해요. “어눌한 것은 바깥으로 돌아가도 좋다”(‘도서관은 발효 중’ 중). 가로썰면 안도 밖이 되죠. 그러니 물 흐르듯이 유려하지 못한 저는 먼 ‘바깥으로 돌아가도’ 좋으니 떠듬떠듬 가겠어요. “밖으로 가는 길은/ 원점을 돌고 돌아/ 갈피를 잡을 수 없”겠지만요(‘토마토’ 중).

그러나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기에 바라는 일들도 한곳으로 모이게 되지요. 무엇을 얻거나 하고자 하는 바람이 좁은 곳에 휘몰아쳐 세상은 늘 흔들리죠.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아야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개성을 펼칠 수 있다고 해요.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래서 절제사만큼이나 제 마음 호리는 이름을 가진 통제사가 필요한가 봅니다. 시인 김헌수가 삼도 통제사인 셈이죠. “나를 업고 가는 달에게 다시 말할 수 있다/ 물결무늬로 겹쳐질 수 있다고/ 거듭 둥글어질 수 있다고”(‘중얼거리는 달과 물은’ 중). ‘겹쳐지고 둥글어’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겠지요. 그곳에 이르면 유다른 특성을 산맥에 널어 말려 한 시절 먹을 수 있겠지요. “색감은 판독하기 어려운 중심을 따라가고/ 나는 내내 터무니없는/ 곡선을 붙잡아 두”겠어요(‘컬러링’ 중). 자신의 색채로 끝없는 설원을 달리는 기차에서 컵라면 국물을 마시며, 제가 “비구상의 끝을 말하면 당신은 추상의 시작을 말”(‘미술관에서 만나요’ 중)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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