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1-03-04 20:19 (목)
눈부신 아침이 그립다
눈부신 아침이 그립다
  • 기고
  • 승인 2021.01.25 1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한 편의 시에 전율과 감동이 한꺼번에 올 수 있을까.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시는 삶의 진정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역사처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시가 정양 선생의 시편들이다. 그의 시편들 중 「내 살던 뒤안에」는 수준 높은 언어감각이 역사에 대한 통찰력으로 확산되면서 비상한 시의 울림을 얻는다.

그는 일상에서 자상한 분이었지만 시대의 질곡에 대해서는 냉철했다. 삶에 얽힌 우여곡절의 원인은 역사의 왜곡에 있다는 점을 꿰뚫어 봤고 이 모순을 시로 형상화했다. 그는 시에 칼끝 같은 면을 가졌다. 시집 『철들 무렵』(2009. 문학동네)이 출간되었을 때 나는 보았다.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학카페에 새 시집을 소개하겠다는 연락이 왔던 것인데 당신은 거기에 올릴 시들을 고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선생님,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또 손보시면 어떡해요? 여쭈었더니 “시집에 수록되었어도 고칠 데가 있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눈 감기 전까지는 자기가 쓴 시를 고치는 게 시인의 의무이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정양 선생의 시(詩)가 한국시의 정점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일상의 구체적인 정황에서 촉발된 시는 동시대 삶의 통점에 집중되면서 4?16참살과 촛불집회에까지 이르는 게 예사다. 그의 시는 광복 후 75년이 넘도록 독립기념일이 없는 참담한 역사, 여기에 함몰된 이 땅의 가난과 무덤조차 없이 떠도는 혼백들에 무례하지 않다. 불평등한 시대의 한복판에 그의 시정신이 빛났던 것이다. 당신은 「나의 삶 나의 문학」(『유심』, 2015, 3.)에서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고백을 했다.

“정년퇴임식 내내 지난 일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스쳤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배되고 투옥당하면서 끝끝내 역사의 흐름을 되찾으려던 이들의 고통스럽던 삶을 상기하면서, 그리고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40년 넘게 변함없이 교직에 몸담고 살아온 나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자괴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5?16쿠데타 이후 장기간의 군부독재와 광주항쟁 그리고 6월항쟁 등을 겪으면서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40년 넘도록 꼬박꼬박 봉급을 챙겨온 나의 정년퇴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무슨 훈장인가를 받으면서 나는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것만 같아서 참담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 엄혹한 세월에 한 달도 안 거르고 또박또박 봉급을 챙겨먹은 내 처지가 너무 부끄러웠다.”

요 근래에 이처럼 뜨거운 고백을 읽어본 적이 없다. 자본증식이라는 소비자본주의의 속도에 말린 시절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참회록처럼 써내려간 글줄은 백설처럼 순결하다. 삶과 역사에 대한 치열성과 순정을 생경한 언어기호에 가두지 않고 입말의 생동감으로 시에 표면화한 것처럼, 자신의 삶도 이 지점에서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이 고백은 문명과 자본의 지배논리에 갇혀 살지 않으려면 속된 것을 일절 끊어버리는 삶의 태도 또한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는 뒷심 못지않게 단단해야 함을 나타낸다.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생명력 넘치는 시편을 발표한 현역 시인 정양. 그의 절창 「내 살던 뒤안」에를 다시 읽는다. 시는 진술이 아니라 시어 개개의 인상과 소리맵시가 어울려 새로운 형상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나는 새삼 깨친다. 당신이 그리워하는 세상, 산도 들판도 골목도 지붕도 평등하게 눈에 덮인- 눈부신 아침이 그립다.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 회장은 시인으로,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