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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선물
보이지 않는 선물
  • 기고
  • 승인 2021.01.2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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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규 원광중 교장
송태규 원광중 교장
송태규 원광중 교장

TV 시청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일기예보는 챙겨보는 편이다. 따뜻한 옷차림을 한 아나운서가 오늘 수은주가 곤두박질할 것이라고 했다. 출근길에 아내가 겉옷 하나를 더 챙겨주었다. 현관문을 나서니 찬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해마다 이맘때면 피부로 느끼는 추위보다 더한 마음속 추위를 안고 살았다. 새 학년을 맞이하려면 신임 부장과 담임 선생님을 정해야 한다. 선생님들과 줄다리기한 지 십 년이 넘었다. 교사들 사이에 12월 한 달만 교장·교감과 등 돌리면 1년이 편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때만 피하면 1년간 어려운 업무를 벗어난다는 말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올해 우리 학교에 적잖은 변화가 올 것이다. 신입생 학급수를 감축한다. 당연하게 교원 정원과 부장 수도 줄어든다. 정원에서 2명을 감축해야 한다. 수업시수가 적은 한 과목은 순회 교사를 지원받기로 했다. 다른 한 과목은 열심히 근무하는 기간제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추운 겨울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선생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요즘 방송이나 신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바로 비정규직과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어느 날 해고노동자가 되어 혹한의 거리에 나앉았다. 복직을 요구하는 피눈물 나는 투쟁 소식이 가슴을 후벼판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작업을 떠맡은 하도급업체 근로자의 현주소는 결코 이웃집 이야기가 아니다.

선생님 한 분이 교장실에 들어왔다. 담임이나 복잡한 업무를 피하기 위한 하소연 때문일까 생각했다. 그가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열었다. 최선을 다하는 기간제 선생님이 떠나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전했다. 전주 모 학교에서 기간제를 모집하는데 혹시 그 학교 교장 선생님과 인연이 닿으면 추천해 달라는 청이었다. 자기 일처럼 간곡했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교장인데, 그런 일은 내가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조금 전, 개인 사정을 부탁하러 온 것으로 지레짐작했다. 끈끈한 동료애가 속물 같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다행히 잘 알고 지내는 교장 선생님이었다. 바로 전화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 온 기간제 선생님에 대해 있는 대로 전달했다. 충분히 참고해서 소식을 주겠다고 했다. 면접을 마치고 답이 왔다. 이 선생님이 일단 올겨울 추위를 피할 수 있어서 그나마 마음이 편했다.

위험과 기회, 위기를 일컫는 또 다른 얼굴이다. 다가올 학교의 상황이다. 일부 부서는 업무변경이 불가피하다. 교감 선생님과 퍼즐 조각을 맞추었다. 힘을 보탤 수 있는 선생님을 한 분씩 교장실에서 만났다. 따뜻한 차 한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툭 터놓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모두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성능 좋은 블루투스처럼 선을 연결하지 않아도 선생님들과 마음이 오갔다. 한 달만 교장·교감과 얼굴 붉히면 일 년 농사가 편하다는 속설은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들 수 있는 것만이 선물은 아니다. 잡히지 않지만 매운 추위를 뚫고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선물이 최고다. 오늘 선생님들에게서 푸짐한 선물을 받았다. 방구들 아랫목처럼 따끈한 선생님들 선물이 아내가 입혀준 겉옷을 뚫고 왔다. 덕분에 2021학년도에도 우리 학교는 내내 훈풍이 불겠다. /송태규 원광중 교장

△송태규 교장은 교육학박사로, 전북혈액원 헌혈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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