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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선수의 '인생 2막'] 88서울올림픽 핸드볼 금메달리스트 임미경
[그때 그 선수의 '인생 2막'] 88서울올림픽 핸드볼 금메달리스트 임미경
  • 송승욱
  • 승인 2021.01.26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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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순’ 신화의 주역... 익산병원 행정처장으로 새로운 삶
강철체력으로 대표팀 합류, 공수 맹활약 구기종목 사상 첫 금
은퇴뒤 유아교육 길 걷다 끈기·열정으로 새로운 인생 도전
임미경 익산병원 행정처장
임미경 익산병원 행정처장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올림픽 구기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축구도 농구도 배구도 아닌 여자 핸드볼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결승전의 상대는 전통의 강호 소련.

경험도 신체적인 조건도 부족했던 터라 일방적인 경기가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5번의 동점과 2번의 역전 등 경기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했고, 한국 여자 핸드볼 선수들은 투지와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끝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역사적인 결승전의 일등공신은 단연 임미경이었다.

당시 임미경 선수는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 내내 상대 주득점원을 꽁꽁 묶는 그물 수비를 펼쳤다.

또 팔을 조금만 올려도 상대 수비가 슛으로 지레 짐작하는 바람에 틈이 생기고 쉽게 돌파하는 경우가 속속 연출됐고, 경기에서 가장 많은 6골을 넣었다.

당시 감독과 중계진은 임미경 덕에 금메달을 땄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최고의 명승부를 펼쳤던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 만들어졌다.

임미경을 비롯한 서울올림픽 당시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여전사들이 이른바 ‘우생순 신화’의 시작이다.

 

△ 꺼지지 않는 불꽃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금메달 신화를 일궜던 임미경 씨의 당시 순간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금메달 신화를 일궜던 임미경 씨의 당시 순간들.

서울올림픽 당시 소련과의 여자 핸드볼 결승전은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명승부다.

기자와 마주한 자리에서 당시 상황을 한참 회상하던 임미경씨(53)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 소개했다.

하마터면 대표팀에 들지 못해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할 뻔했다는 것.

상황은 이렇다. 당시 핸드볼 국가대표 감독은 고병훈씨.

앞선 1984년 LA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핸드볼은 은메달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위업을 달성했다. 세계가 깜짝 놀랐다.

당초 한국은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중국에 밀려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내지 못했기 때문에 출전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의 올림픽 보이콧으로 겨우 진출 자격을 얻었고, 은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고 감독은 라이트백(라이트이너) 포지션을 가장 고심했다.

보통 왼손잡이가 맡는 이 자리를 두고 고 감독은 LA올림픽에서 주득점원으로 활약했던 선수 대신 오른손잡이 임미경을 택했다.

스무 살의 임미경 낙점은 그야말로 파격적 발탁이었다.

그렇게 고병훈호에 승선한 임미경은 올림픽을 앞두고 치러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주득점원인 좌우 백 가운데 임미경의 활약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누구보다 훈련에 열과 성을 다했던 임미경은 충격에 빠졌고, 짐을 꾸리며 퇴촌을 준비했다.

“기술은 몰라도 누가 체력적으로 임미경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고 감독은 달랐다.

임미경을 대신할 새로운 선수를 뽑으면 16개월여 쌓아온 팀워크가 무너질 수 있고 그간 함께 고생한 선수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핸드볼협회나 언론에서 질타와 압박이 이어졌지만, 스스로 결과에 책임지겠다며 끝까지 버텼다.

그렇게 주전을 꿰찬 임미경은 올림픽에서 펄펄 날았다.

고 감독과 당시 경기 중계진이 임미경 덕에 금메달을 땄다고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였다.

그렇게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동점과 역전을 반복한 끝에 강호 소련을 21대 19로 제압한 한국은 올림픽 구기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경기의 일등공신은 단연 임미경이었다.

당시 고 감독은 “골은 욕심내지 마. 수비에서 네가 상대 주득점원을 봉쇄하면 승산이 있다”고 당부했다.

이에 임미경은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 내내 그물 수비를 펼치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며 고된 체력 훈련에 매진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또 팀 내 가장 많은 득점인 6골을 넣었다. 워낙 작은 스윙과 빠른 슈팅에 소련은 속수무책이었다. 라이트백 자리에서 오른손잡이의 슈팅 각도를 확보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도 빛을 발했다.

 

△ “포기를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된다”

임미경 익산병원 행정처장
임미경 익산병원 행정처장

임미경(53)은 은퇴 후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익산병원 행정처장이 현재 그의 직함이다.

그는 평생 운동밖에 모르고 살았기에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은퇴 후 처음에는 대학 당시 유아교육학 전공을 살려 익산시 국민생활관에서 아기스포츠단을 운영했다.

기존 유아교육에 스포츠를 접목하는 등 일반 유치원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프로그램들을 도입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는 원광대학교병원 직장어린이집을 거쳐 익산병원에 입사했는데, 익산병원은 그간에 해왔던 운동이나 유아교육과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도전이 쉽지는 않았지만 체력과 열정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기에 그는 매사 자신감을 갖고 임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그의 성격과 결단력, 추진력 등도 한몫을 했다.

그러면서 운동이 아닌 다른 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핸드볼 외에는 전문 분야가 없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래서 잘 알 수 있을 때까지 연구하고 공부했다.

핸드볼은 내가 세계 최고인데 다른 것은 최고가 되지 말란 법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르면 계속 물어보고 한 번 더 찾아갔다.

그런 그의 끈기와 열정이 지금의 임미경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임미경씨는 “적잖은 시간을 핸드볼만 하며 보냈는데, 사실 핸드볼을 하면서 배운 것이 정말 많다. 팀 경기가 결속력이나 조직력, 배려, 하물며 잔머리까지 주위와 어떻게 함께 호흡하는지는 충분히 경험했다”면서 “특히 슈팅을 할 때나 슈팅을 막을 때는 상대의 몸짓이나 표정, 눈빛을 읽어내야 하기 때문에 그런 훈련이 자연스럽게 돼 있어서 은퇴 후 사회생활을 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피력했다.

또 “포기를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된다는 믿음을 갖고 산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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