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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선임기자의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걷기와 독서가 일상인 신정일 우리 땅 걷기 이사장
[김원용 선임기자의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걷기와 독서가 일상인 신정일 우리 땅 걷기 이사장
  • 김원용
  • 승인 2021.02.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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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집이요 집이 길이다", "길을 나서면 모든 게 기적"
"해찰하면서 걸어야 정신 건강에 좋다"

온통 책이다. 화장실만 빼고 집 안 전체가 책 병풍을 쳤다. 동서고금의 책들이 망라됐다. 웬만한 공공 도서관을 뺨치는 장서 규모다(1만5000권). 문화사학자 신정일 씨가 사는 전주시 진북동 아파트 주거 공간이 그렇다. 코로나 시대, 도보여행가인 그에게 숨통을 틀 수 있는 ‘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으나 막상 책이 ‘길’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기실 신 씨에게 ‘책과 길’은 한 몸이다. 그가 자주 쓰는 말도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고,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다.

실제 지금의 도보여행가로 유명 인사가 되기 전부터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던 그에게 위안이 됐던 게 책이었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카프카, 니체, 도스토옙스키 등의 글들 모두 청소년기 호롱불 밑에서 읽은 자산이다. 그는 남들이 기억하기 싫어하는 군대시절을 자신의 오늘이 있게 한 원동력으로 여긴다. 그는 포경선 4년을 탄 경험을 바탕으로 <백경>을 쓴 허먼 멜빌의 ‘내게 고래잡이 4년은 하버드대이자 예일대였다’로 군대를 떠올린다. 군중문고를 만들어 군대에서 사서 아닌 사서 역할을 했던 그는 군대가 아니었으면 책만 읽는 반거충이가 됐을 것이란다. 제대 후 곧바로 서울 종로서적을 찾아 군대에서 모은 월급 모두 책 구입에 사용한 그는 그 서점에 자신의 저서가 꽂히는 꿈을 꿨다. 그가 쓴 책만도 100권이 넘으며, 책 인세로 먹고 살 수 있는 인디라이터까지 됐으니 그 이상의 꿈을 이룬 셈이다.

그가 쓴 책들은 대부분 ‘길’이 바탕이다. <신 택리지> <한국의 사찰 답사기>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 <길 위에서 배운 것들>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왕릉 가는 길> 등. 도보답사를 통해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한국 10대 강, 한국의 산 500여 곳, 영남·관동·삼남대로를 도보로 답사한 30여년의 경험이 이 책들에 버무려졌다.

2005년 사단법인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를 만들어 우리 땅의 소중함과 우리 문화의 속살들을 안내하는 신정일 이사장에게 걷기란 무엇일까. 곧 철학이란다.

“사람들은 걸음을 떼면서부터 온갖 사물과 사람을 만나고, 역사와 문화를 만난다. 더 중요한 것은 걷기를 통해 내가 나를 만나는 것이다. 루소는 철학의 시작을 발이라고 했다. 발을 떼면서부터 철학이 시작된다. 모든 사물들이 물음을 준다. 철학은 물음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고 했고, 발로 쓴다는 니체나, 견문이 넓어야 안목이 넓다는 주자의 말도 걷기를 통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옛날의 현자들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을 때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칸트 니체 헤세도 걸으면서 학문을 완성했다.”

 

도보여행가 신정일 씨가 책으로 둘러싸인 자택에서 '길이 집이요 집이 길이다'라며 걸으면서 얻은 해안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도보여행가 신정일 씨가 책으로 둘러싸인 자택에서 '길이 집이요 집이 길이다'라며 걸으면서 얻은 해안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 걷기의 매력이라면.

“오래 전 낙동강을 혼자 걸었을 때, 첫날 64킬로, 그 다음날 40킬로를 걸었다. 발이 붓고 몸이 지쳤어도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그 풍경들을 만날 때 느끼는 감흥은 늘 새롭다. 언제 봤던 것도 오늘의 그것이 아니다. 길을 나서면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 앙드레 지드도‘현자란 바라보는 모든 것을 경탄하는 사람’이라고 <지상의 양식>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감흥과 경탄을 자아낼 수 있는 자연과 만나도록 하는 게 걷기의 매력이다.”

 

- 신 이사장께 길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것 같다.

“나에게 길이 집이고 집이 길이다. 그리 생각하면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인 게 우주 전체인 걸로 알고 꿈으로 삼는 게 좀스럽게 보인다. 세상이 내 집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 땅 걷기 단체를 이끌면서 외국에 나가면 왜 남의 땅 가냐고 하는데, 어디든 내가 밟는 순간 그건 우리 땅이다. 소크라테스가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에 우주에서 왔다고 했단다. 넓게 바라봐야 한다.”

 

- 보통은 그런 깊은 철학 차원이 아닌, 건강을 위해 걷기를 한다. 단체를 이끌다보면 아무래도 뒤처지는 사람도 있을 텐데.

“회원 중 아픈 사람이 많다. 걷는 게 치유다. 처음에 힘들어한다. 그럴 때 우리가 일생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게 걷는 것이라는 말로 격려한다. 김수영 시인의‘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라는 시구나, 비가 내릴 때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 하면 ‘비가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시구도 동원한다.”

 

- 걷기 방식은 따로 있는가.

“걷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만 하더라도 춤을 추듯 걷는다거나 술 취한 사람처럼 걷는다고 한다. 방은진 영화감독이 다큐를 찍을 때 나보고 새끼노루처럼 걷는단다. 걷기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해찰하면서 걸어라고 권하고 싶다. 해찰해야 못보던 걸 보게 된다. 죽기살기로 걷는다면 사물을 보지 못한다. 육신만이 아닌 정신도 건강해야 진짜 건강해진다. 그러려면 남의 걸음을 의식할 필요 없다.”

 

- 요즘도 걷기 계속하나. 올 다녀온 곳을 소개해달라.

“주중에 집필하고 주말 길을 떠난다. 올들어 매월당 선생의 흔적을 찾아 충남 보령의 무량사를 다녀왔고, 논산의 성삼문 묘와 견훤 왕릉, 쌍계사 일대를 둘러봤다. 엊그제는 서천의 홍원항와 무창포 해안을 걸었다. 주말 1박 혹은 2박을 해왔는데, 요즘은 대부분 단일 코스다.”

 

- 본인이 이끌고 있는 우리 땅 걷기는 어떤 조직인가.

“2005년 조직됐으며, 현재 회원 수는 6500명이다. 별도 사무실이나 조직 없이 온라인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활동을 중단했으며, 코로나 이전에 많을 때는 400~500명까지 걷기에 참여했다. 회원들을 구속하는 어떤 일도 벌이지 않고 자력갱생을 외친다. 통제를 하는 순간 내 자신도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 좋은 길을 많이 만났을 텐데 도내 대표적인 길 몇 개를 꼽는다면.

“도심 속에 가장 아름다운 길은 전주 건지산 길이다. 도시 안에 그리 나지막하면서도 참나무 단풍나무 플라타너스 아카시아 등 온갖 나무를 품고 있다. 국립산림문화유산으로 추천했다. 변산 마실길도 참 좋은 길이다. 바람으로 빗질하면서 걷을 수 있는, 동남풍을 맞으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 문화재 위원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60개 국가 명승길을 제안했다. 전북에 명승지를 만든다면.

“정여립 생가에서 소양 웅치전적지-죽도로 가는 길을 묶어 역사가 있는 길을 명승으로 지정하면 좋겠다. 부안 마실길은 현재 바닷가로만 되어 있는 데 내변산 길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익산에서는 왕궁탑에서 시작해 동부도리, 쌍릉, 미륵사지, 연동리 석불, 여산 동헌, 천주교 성지, 가람 생가, 소세양 묘를 연결하는 미륵산 둘레길을 만들지 않는 게 아쉽다. 남원은 춘향이만 사랑하지 말고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지를 자산삼아 사랑길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 신정일 이사장은

신정일 이사장(67)이 걷기에 빠진 것은 어려웠던 청소년기 때문이었다. 진안 백운 출신의 그는 또래 친구들이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산으로 가거나 책을 읽는 일로 마음을 달랬다. 15세 때 출가 하려고 화엄사까지 걷고, 차비가 없어 대구에서 전주까지 걷기도 했다. 외롭고 가난했던 시절이 그를 도보여행가로 만든 셈이다.

그는 대화할 때 동서고금의 명언·명구들을 술술 인용한다. 많은 독서도 독서지만 어찌 저리 기억할까 절로 탄복하게 된다. ‘인간 네이버’라는 별명이 따를 만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생전에 그를 천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천재가 아닌, 단지 독서법이 달랐을 뿐이라고 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에 시험을 위한 공부 대신 연예하듯 책을 읽은 차이란다.

그의 반골기질은 안기부로 끌려가 취조를 받은 데서 싹텄다. 군 제대 후 막노동으로 돈을 모아 전북대 앞에 시식코너를 냈는데, 그곳을 출입한 재야인사들과 교분 때문에 1주일이나 취조를 받았다. ‘정일’이라는 이름까지 문제를 삼더란다. 동학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 그는 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만들어 여러 사업들을 펼쳤다.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중 특히 김개남에 꽂힌 그는 김개남 추모비를 세우면서 신영복 선생과 김지하 시인과 교류하기도 했다. 정여립과 후백제도 그가 관심을 갖는 분야다. 전주 혁신도시 도로를 정여립로로 명명하는 데 앞장서기도 한 그는 전주 도심에 정여립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을 기리는 사당 하나 없다는 게 가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가 낸 100여권의 저서 중 <신택리지>는 북한지역까지 아우른 11권으로 된 역작이다. 이 땅 구석구석을 밟아보고 쓴 21세기 택리지다. <대동여지도에서 사라진 옛 고을들>도 걷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신 이사장만이 쓸 수 있는 책으로 평가받았다. 100권째 저서인 <왕릉가는 길>은 영역판이 준비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쓸 소재가 많단다. 현재 준비하는 책만도 10권 정도라고 했다. 매 순간이 기적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책 ‘느낌은 어디서 오는가’도 그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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