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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한다는 것
공감한다는 것
  • 기고
  • 승인 2021.02.2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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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규 원광중 교장
송태규 원광중 교장
송태규 원광중 교장

어제 컴퓨터 자료를 정리하는데 눈에 익은 글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찬찬히 읽다 보니 지난해 일이 떠올랐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당시 코로나19라는 뾰족한 통증에 상하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학교라고 아픔을 피해갈 도리가 없었다. 학생이 없는 개학을 상상하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주인공이 빠진 영화처럼 선생님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학생 얼굴을 못 본 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을 넘겼다. 직원회의를 앞두고 선생님들께 메신저를 통해 글 한 편을 보냈다. 우리는 여태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에서 기우뚱거리고 있다. 이럴수록 지혜를 모으고 서로 배려하자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 글을 읽은 선생님이 답을 보냈다.

“모든 국가의 유기적인 시스템이 마비되고 붕괴하면서 허둥대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런 판국에 학교 현장의 혼선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고민을 담은 진솔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함께 힘을 모아 나아가자고 읽었습니다. 단번에 공감해서 읽자마자 교장 선생님도 힘내시라고 얼른 몇 줄 보냅니다.”

때로 교장은 학교 안에 떠 있는 고도(孤島)에서 산다. 이따금 의견이 분분한 사안은 교장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교장은 책임질 뿐 불평해서는 안 된다. 답장을 읽는 짧은 순간 눈시울이 노을처럼 벌겠다. 외롭지 않았다. 고마웠다. 이 글을 출력해서 직원회의 시간에 읽었다. 회의를 마치고 선생님이 교장실을 찾았다. “세상에! 제가 쓴 글을 읽으실 줄 상상도 못 했어요. 첫 마디 듣는 순간 얼마나 민망하고 당황스럽던지. 누가 물어보지도 않겠지만 행여 알까 부끄러워 나 아닌 듯,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 관리하느라 혼났어요.” 그가 멋쩍게 웃었다. 난 그저 공감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소설가 이외수 씨는 “대상과 하나 되는 가슴으로 글을 쓰고 싶다”라면서 “세상에서 제일 매운 고추는 마른 고추도, 빻은 고추도, 파란 고추도, 빨간 고추도 아니다. 눈에 들어간 고추다”라고. ‘눈에 들어간 고추’라니. 순간 그 아리고 매운 감각이 그대로 느낌으로 전해왔다. 대상과 내가 하나 되면서 나도 모르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강도와 신경통』에는 신경통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강도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그가 들어간 집에서 주인이 신경통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도둑질은 안 하고, 밤새 주인과 마주 앉아 신경통 치료 이야기만 하다가 새벽에 그 집을 나온다. 이 또한 공감의 문제이다. 서로 고통과 약점을 나눌 때 강도는 어느새 강도가 아니었다. 공감하면 도둑놈도 친구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말했다. 21세기에 최고의 강자는 ‘공감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세상을 사는 데 공감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질임을 강조하고 있다. 알고 보면 그만큼 일상에서 공감 능력을 내면화하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따금 교장실에 찾아와 마음의 상처를 하소연하는 선생님이 있다. 내 한마디에 위로와 희망이라는 새순을 키우고 싶은 것이다. 선생님의 입장으로 다가가 건네는 내 추임새가 그의 마음에 구구절절하게 닿는 것, 이것이 소통이고 공감이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상식적인 사람이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나갈 능력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송태규 원광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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