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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웅치·이치전투… 임진왜란 승리 교두보 역할
전북 웅치·이치전투… 임진왜란 승리 교두보 역할
  • 김세희
  • 승인 2021.04.08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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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당시 전북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교두보 역할을 한 지역이었다.

특히 웅치(진안과 전주사이에 있는 고개)·이치(금산 서평)에서 벌어진 전투는 조선이 왜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이자,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하던 전라도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북에서 벌어진 이 전투들은 한산·행주·진주대첩, 명랑해전과 비교해 여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오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음력 기준)한 지 429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웅치·이치 전투를 중심으로 전북 임진왜란사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북 역사학계 등에 따르면, 1592년 있었던 웅치·이치전투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계기를 제공했다.

웅치전투는 패배했으나,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저지하면서 조선의 수군과 전라감영의 병력이 결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

이치전투에서는 전라도 절제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조선관군의 두 배에 달하는 왜군 2000명을 격파했다. 이 때문에 병참기지인 전라도를 지켜냈고, 한양과 평양에 주둔했던 왜군의 철수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밖에도 전북의 관군과 의병은 전국적으로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 고창유림이 대거 참여한 ‘장성남문창의’(유생의병의 결의)는 1592~1593년 진주성 싸움, 경상도 전투에도 참여했으며, 1593년 행주대첩에서는 1년 전 이치전투에서 활약했던 전북 관군이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북 임진왜란사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연구와 자료 정리가 미비해,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미 경북에서는 <경북의병사>(1990년), <대구지역 임진란사>(2017), <경북지역 임진란사>(2018)가, 전남에서는 <호남지방임진왜란사료집>(1990)이 발간됐다. 최근 전남도는 2024년까지 440억원을 들여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일대 36만㎡에 건물 연면적 8300㎡규모로 남도 의병역사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전북에서도 임진왜란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북 역사학자들은 △이지·웅치, 부안 호벌치, 남원성 전투에서 의병의 역할과 활용에 대한 자료조사 △고창 남당 호남 창의 동맹의 실체 △임진왜란을 기록한 일본, 중국 자료의 수집 △전북 주요 지역별 전투 재정립 등을 주장하고 있다.

전북일보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전북의 400여년 전 민·관이 하나가 돼 대항일 투쟁을 벌였던 역사를 꼼꼼히 짚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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