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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목숨의 기억'
[책의 향기] '목숨의 기억'
  • 도휘정
  • 승인 2007.02.09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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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에 싸인 유토피아적 충동...소설가 최인석 지음
남원이 고향인 소설가 최인석씨. (desk@jjan.kr)

“나에게 희망을 얘기해 달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사실은 나 역시 희망을 말할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 최인석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최근 그가 펴낸 「목숨의 기억」(문학동네)은 여전히 우울했다. ‘유토피아에 대한 강렬한 희구와 현실의 심연에 대한 탐사를 특유의 부정의 상상력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온’ 그의 글쓰기도 변함이 없었다.

「목숨의 기억」에는 유토피아와 절망,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이곳과 저곳의 이분(二分)에 의문을 제기하는 중단편 소설 다섯편이 실렸다.

표제작 ‘목숨의 기억’은 조부모 손에서 자란 ‘나’가 아버지를 찾는 과정. 교사였던 아버지가 물에 빠진 아이를 건지다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회사로 들이닥친 정보부 직원들은 아버지가 간첩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치매인지 종잡을 수 없었으나 나는 어쨌건 그 무수한 미완결의 얘기들 가운데 그의 삶이, 혹은 꿈이 담겨 있다고 믿었다.’

삶을 꿈과 구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꿈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가혹하고 비루한 것에 그치고 말 것인가.’라고 써놓았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격리는 사람에게는 가혹하다.’는 문장 역시 ‘이분’(二分)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답이다.

‘사람은 때가 되면 죽어 사라지지만, 그가 꾼 꿈은, 그것이 아름답고 지극한 것이라면, 결코 사라지지 않아, 꽃씨처럼, 또다른 자리에, 또다른 사람의 가슴에 떨어지고, 그렇게 꿈으로, 꿈으로 이어지다가 언젠가는 피어나는 것 아닐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의 유토피아적 충동이 직접적이었다면, 이번 소설집에서는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이 보이지 않은 겹에 의해 둘러싸여 졌다는 것이다. 강렬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흐려진 것은 아니다.

‘미미와 찌찌­’ ‘달팽이가 있는 별’ ‘내 님의 당나귀’ 등은 경제적 하층민들의 삶을 다룬 작품들. 얼기설기 철망으로 막아놓은 시커먼 구멍, 주변의 깨어진 보도블록, 하수 쏟아지는 소리, 역겨운 냄새…. 음침하고 더러운 몰골은 책을 덮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마취시키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날들이 여전하다.”는 최인석. 그래도 창 밖에서 아침이 기웃거리면 짱짱한 하늘에서 그는 ‘작은 새’를 찾는다.

작가 고향은 전북 남원. 1953년 태어나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80년 희곡 ‘벽과 창’으로 월간「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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