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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지혜를 쫓아가는 길
[책의 향기] 지혜를 쫓아가는 길
  • 전북일보
  • 승인 2007.04.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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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굽히면 진리를 줍는다' M.토케이어 지음

며칠 전, 책꽂이 한 귀퉁이에서 15년을 훌쩍 넘긴 수첩 하나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 녀석은 책을 읽다가 어떤 글을 쓸 때, 이용하고 싶은 문구로 가득 차 있었다. 모나미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아주 비뚤배뚤한 글씨였지만 반가웠다.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여름이었다. 또래 여학생을 보고 금새 얼굴이 빨개지는 시골아이의 어수룩함, 먼지를 뒤집어쓰고 동무들과 함께 공을 차서 까무잡잡해진 얼굴, ‘성적은 행복순’이 아니라는 말을 진짜로 믿고 다녔던 시절. 유난히 숫기가 없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그래서 자신감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이미 결혼을 한 젊은 여선생님한테 개인교습을 받는 방에서도, 목사님의 아들과 친구라서 다니게 된 교회에서도 언제나 처량한 숙맥일 수밖에 없었다. 살면서 넘고, 넘고, 또 넘어야 할, 수없이 많은 고갯길이 있을 것이라는 진리를 미쳐 깨우치지 못 했던 ‘나’였다.

‘갈대와 같이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사는 지 항시 고민하고, 시간은 곧 인생이기 때문에 소비하지 말고, 때로는 들판의 잡초나 쇠에 붙어 있는 녹도 쓸모가 있고, 실패는 기념할 일이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유머는 삶에서 강한 무기이기에 항상 웃는 방법을 익히고, 자만심은 곧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고, 날개가 무겁다고 짐이라 생각하면 날개를 쓸 줄 모르는 새가 되며, 입은 하나요 귀는 둘인데 말이 많으면 해로우니 말 하는 것의 두 배를 듣고, 나의 겸손함을 절대 자랑하지 말라’는, 절대 지침을 여전히 기억하고 살 수 있는 이유는 가슴이 이것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 믿고 산다.

시대와 민족, 인종의 문화는 서로 다른 삶의 양식과 정신을 낳는다. 동양문화권에서, 더 정확하게는 유교문화 속에서 서른이 넘게 살아온 내게는 명나라 홍자성의 「채근담」이 더 살갑게 느껴지지만 유대교의 율법, 전통, 축제 등을 망라한 「탈무드」에서 건져 올린 지혜 역시 반듯한 가르침이다.

무언가 갇혀있던 존재를 깨우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헤세가 얘기했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글귀를 갈구하는 건장한 ‘젊은 놈’이 되어 버렸다. 책에서 만난 유태인의 정신적 가치와 처세는 늘 새로운 세계와 만나야 하는 나에게, 물질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 가려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 해준다. ‘몸을 굽혀라, 그러면 진리를 주울 것이다‘고.

/정훈(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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