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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삼석 회장은…문구 제조업 '외길'
송삼석 회장은…문구 제조업 '외길'
  • 조상진
  • 승인 2012.04.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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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우리나라 최초 볼펜 생산

(주)모나미 송삼석 회장은 남다른 근면과 강인한 의지로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문구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일으켜 세웠다. 그러한 과정에서 송 회장을 떠받쳐 온 기둥은 두 개다. 하나는 기독교 신앙이요, 또 하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기독교 신앙은 모태신앙으로 손자까지 5대째 이어지고 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모나미를 키우면서 얻어진 철학이다.

이는 그의 아호'항소(恒笑)'가 잘 보여준다. '항상 웃는다'는 뜻으로, 온화한 얼굴과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친구들이 붙여주었다.

송 회장은 1928년 군산시 구암동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송기주씨로 영명학교를 나와 군산 야소병원 사무장으로 있다, 독학으로 약사면허증을 취득했다. 또 3·1 만세운동으로 1년 동안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이후 완주 삼례로 옮겨 '송약방(宋藥房)'을 차렸다. 형제들은 모두 부친의 뜻에 따라 미션스쿨로 진학했다. 위로 두 형은 세브란스 의전을 나왔다. 큰 형은 연세대 의대 교수를 지냈고, 둘째 형은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했다. 또 누나 셋은 모두 이화여대를 나왔다.

막내인 송 회장은 삼례초등학교를 거쳐 1941년 5년제 전주 북중(전주고 23회)에 입학했다. 대학 진학시 부모님은 의대를 원했으나 서울대 경제학과(6기)에 진학했다. 이현재 전 국무총리, 김재순 국회의장, 조순 경제부총리, 고재청 국회 부의장 등이 동기다. 6·25 전쟁 중에는 의용군으로 붙잡혀가다 탈출하는 등 두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송 회장은 부산 피난시절 무역회사인 삼흥사를 거쳐 풍화산업 무역과장을 지냈다. 1955년 광신산업에 지분 10%를 받고 상무로 스카우트됐다. 당시 광신산업은 일본에서 문구류를 수입해 판매하는 무역회사였으나 1960년 광신화학으로 이름을 바꿔 물감과 크레파스를 생산했다. 1963년 5월 우리나라 최초로 볼펜을 생산했고 이후 탈세사건, 공장 화재 등을 극복하고 승승장구했다.

송 회장은 70세 되던 1997년 장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모나미는 그 뒤 문구제조업체에서 탈피, 글로벌 사무용품 유통서비스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태국과 중국 폴란드에 해외공장을 두고, 세계 100여 국에 제품을 수출한다. 또한 자회사로 파커와 워터맨 등을 수입하는 (주)항소를 비롯 모나미스테이션, 원메이트, 모나미 G&P, 모나미 이미징솔루션 등을 두고 있다.

송 회장은 누구보다 고향 일에 앞장서 왔다. 재경(在京) 전북도민회장을 비롯 서울에 있는 전북출신 정·관·재계 인사 모임인 모악회 회장, 재경 전주고 총동창회장 등을 오랫동안 맡아 전북인의 긍지를 높이는 구심점이 됐다. 2010년 제6회 자랑스런 전북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역경의 열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내가 걸어온 외길 50년 등이 있다.

한편 이화여대 정외과 출신인 부인 최명숙 여사(78)는 이화여대 총동창회장을 연임했다. 세 아들은 모두 미션스쿨인 연세대를 졸업했다. 큰 아들 하경(53)은 미국 로체스터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부친의 뒤를 이어 15년째 모나미 사장을 맡고 있고 둘째 아들 하철(51)은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귀국, 항소 사장으로 있다. 사돈은 삼양사 김상하 회장이다. 셋째 하윤(49)은 모나미 부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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