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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과 九牛一毛
사마천과 九牛一毛
  • 김재호
  • 승인 2013.01.14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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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

중국 한무제(漢武帝, B.C 141-87) 때 태사령을 지낸 사마천은 역저 '사기'를 저술한 인물이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저술한 사기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는 것을 보면,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명언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사마천이 사기에 담은 숱한 역사적 사실, 교훈, 철학, 정치, 인간관계, 처세 등은 21세기에도 많은 부분 유효해 보이니, 2000여년의 세월도 인간의 내면적 정신세계에서는 찰라의 한순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마천에게는 사기 뿐 아니라 자신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한나라 장수 이릉(李陵, B.C ?-72)이 흉노족을 정벌하러 출병했다가 패하고, 결국 투항했다. 한무제는 격노, 이릉의 일족을 참형하라고 명했다. 화가 난 황제 앞에서 중신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때 사마천이 황제에게 간했다. 이릉이 5000여명의 보병으로 수만 명의 적 기병을 맞아 잘 싸웠지만 원군이 오지 않아 결국 중과부적으로 패한 것으로 보이고, 흉노에 투항한 것도 훗날 황은에 보답할 기회를 얻고자 하는 고육책으로 보이니 부디 용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더욱 화가 난 황제는 사마천을 참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당시 한나라에서는 사형수가 살아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50만 전을 국가에 내는 것이요, 또 하나는 궁형(宮刑)을 받는 것이었다. 궁형은 사내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형벌이다. 가난했던 사마천에게 50만전을 마련할 길이 없었고, 끝까지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해야 했던 사마천은 궁형을 선택한다. 이른바 '이릉의 화'다.

후에 임안이라는 사람이 태자의 반역죄를 소홀히 조사했다는 미움을 사 결국 참형을 선고받았다. 사마천은 임안에게 쓴 편지 보임안서(報任安書)에서 궁형의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목숨을 건진 이유를 말한다.

그는 한 사람의 목숨을 소털 하나에 비유한다. "내가 사형에 처해지는 것은 한낱 아홉 마리의 소에 난 털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어 "내가 죽으면 세상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다 사형에 처해졌다고 하지 않고 황제에게 나쁜 말을 하다 큰 죄를 지어 죽었다"고 말할 것이라고 썼다. 어리석은 개죽음을 당했다고 비웃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한 노복이나 하녀조차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자결하는데도 불구, 자신이 자결하지 않고 치욕스런 궁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나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고자 했지만, 초고(草稿)도 쓰기 전에 이런 화를 당했다.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극형을 무릅썼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난 사마천은 결국 130여권, 50만자에 이르는 사기를 완성한다. 오죽하면 미국 프린스턴대학 니콜라 디코스모 교수는 "중국을 탄생시킨 것은 진시황제가 아니라 역사가 사마천이다"라고 추앙했을까 싶다.

거세당한 그는 천대받는 인생을 크게 낙심해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사마천이 결과적으로 궁형에 따른 모든 정신적 충격을 이겨내고 역저를 남겼지만, 그가 감내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자살 천국이라도 된 듯 자살 사건이 증가, 큰 사회문제가 됐다. 자살 증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어느새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까지 썼다. 유명인들이 자살하면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이것이 베르테르 효과까지 불러와 연쇄적인 자살을 유도한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까지 생활의 어려움, 한 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게 하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맹점이다. 2000년 전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딛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작은 것에 너무 쉽게 상처입고, 너무 쉽게 절망하는 것 같다. 목표 의식은 작아졌고, 나약해진 탓이다.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2000년 전 궁형의 치욕을 딛고 일어선 사마천이 친구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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