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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으로 떠나는 매화 꽃놀이】섹시한 홍매화도 도도한 청매화도 봄향기 그윽
【하동으로 떠나는 매화 꽃놀이】섹시한 홍매화도 도도한 청매화도 봄향기 그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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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3.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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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열린 광양 국제매화축제기간 중 흐드러지게 핀 매화. 사진제공=광양시청

"매화는 봄의 전령사죠. 이렇게 하얗고 예쁜 꽃이 그런 역할을 맡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지난 주말 부산 해운대구 우동 한 아파트에 갔다가 꽃이 활짝 핀 매화나무를 발견했다. 한 할머니가 스마트폰으로 꽃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집에 가서 사진기를 가져와 다시 찍을 예정이나 혹시나 싶어 미리 촬영해 둔다는 것이었다. 삭막한 아파트의 하얀 벽 사이에 핀 하얀 매화꽃과 향기는 특별했다.

갑자기 매화가 보고 싶어졌다. 때마침 경남 하동에서 매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달 중순 하동공원에 홍매화가 핀 데 이어 하순에는 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에 청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남해고속도로를 달렸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추위도 오래갔다. 그래서 올해는 매화 피는 시기가 많이 늦어졌다고 한다. 매화가 늦게 피면 해충 피해를 덜 입어 가을에 매실 수확이 좋다고 하니 오히려 다행이다.

먼저 들른 곳은 하동군청 뒤편에 있는 하동공원이다. 좁고 가파른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섬진강은 물론이고 하동읍 전경이 다 내려다 보인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서 있고, 여러 갈래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매화 모양의 야간 조명이 이채롭다. 밤이 되면 제법 볼 만하겠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시의 언덕'에 만들어진 각종 시비가 보인다. 최치원, 안희제, 이인로, 정공채 등 고금의 학자와 시인들이 쓴 시를 바위에 새겼다. 안희제 선생의 '섬강춘작(蟾江春酌)'이라는 시를 읽다 보니 저 아래 붉은 색종이를 아무렇게나 뿌려놓은 듯한 게 보인다. 홍매화가 화려하게 만개한 것이다. 하동공원 전망대가 잘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홍매화나무 10여 그루가 모여 꽃을 활짝 피웠다. 근처에 다가서지도 않았는데 진하게 달콤한 매화향이 날아온다.

철쭉처럼 짙은 핏빛의 홍매화는 어떻게 보면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분명히 자극적이고 매력적이다. 과거 미모가 탁월했던 중국 송나라 무제의 딸 수양공주가 누각에서 잠든 사이 붉은 매화꽃잎이 이마에 떨어졌는데 아름다움이 주변을 더욱 눈부시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여자들 사이에 이마에 붉은 매화 화장을 하는 게 유행이었다고.

부처님께 드리는 공물 가운데서도 꽃이 으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남과 경남의 유명 사찰에는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지 않은 곳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백양사 고불매, 선암사 선암매, 송광사 송광매, 통도사 자장매 등 유명한 사찰 매화가 한둘이 아니다.

고려 시대 문인 이인로의 '섬진강 낙조'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해가 기울어 강산의 경치 한결 뛰어나/한없이 넓고 붉은 물결 위에 두어 점 푸르구나.' 하동공원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낙조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고 한다. 붉은 매화꽃밭에서 바라보는 붉은 노을은 과연 어떤 장관일지 궁금해진다.

홍매화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다시 정신을 차려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행선지는 청매화가 핀 상평마을이다. 최참판댁으로 잘 알려졌다. 사실 하동에서 매화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은 먹점마을이라고 한다. 하동군청에서 상평마을로 가는 도중에 나오는 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의 매화는 아직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했다.

섬진강을 따라 달리다 보니 강 모래밭에 독수리 여러 마리가 앉아 있는 장면이 보인다. 겨울철이면 북쪽 지방에서 100여 마리가 날아와 섬진강에서 겨울을 보낸다고 한다. 상평마을 인근의 평사리공원에 두 그루 소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부부송'을 지난다. 소설 '토지'의 두 주인공인 서희와 길상의 이름을 따 '서희와 길상 나무'라고 불린다.

상평마을에는 매화가 많이 피었다. 곳곳에서 화려한 매화가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곧 찾아올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봉우리를 벌린 꽃은 봄 냄새를 조금이라도 더 빨아들이려는듯 대기를 향해 꽃술을 쭉 내밀고 있었다. 아직 피지 못한 몽우리들도 하늘을 보기 위해 조금씩 꿈틀거리는 듯했다.

최참판댁 별당 담벼락 앞에도 매화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아직 꽃은 제대로 피지 않았다. 꽃 몽우리만 입을 오물거리고 있을 뿐이다. 소설 '토지'에서 서희의 어머니였던 별당아씨는 밤에 매화를 바라보면서 냉정한 남편과 어린 딸 생각에 매일 눈물만 흘리지 않았을까. 최참판댁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담장 아래에 산수유 꽃이 예쁘게 피었다. 대학교 동기라는 두 중년 여성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꽃 아래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산수유나무 아래 양지에서는 한 처녀가 봄쑥을 캐고 있다.

부산일보=남태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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