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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왔다
오빠가 왔다
  • 이화정
  • 승인 2013.04.23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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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숏!숏! 2013 참여 소설가 김영하
▲ 소설가 김영하. /연합뉴스

소설가 김영하(45)는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힘든 작가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김영하는 현재 17년차 작가다. 2004년 한 해 동만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고, 2012년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던 이상문학상까지 탔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한국 문단에서 보기 힘든, 분류하기 애매한 작가로 간주돼 왔다. 그도 그럴 듯 김영하의 소설은 스펙트럼이 넓어서 이런가 싶으면 저렇고, 저런가 싶으면 꼭 저렇지도 않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몇 분 만에 내리는 과단성을 보이는 한편 글이면 글, 말이면 말 뭐든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예술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궁리 끝에 찾아낸 방법이 퍼즐 맞추기다. 퍼즐 조각 몇 개로 김영하란 큰 그림을 조립할 수밖에 없었다.

■ 그를 키운 8할은 군대
그는 1968년 12월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군인 아버지를 따라 진해, 양평, 파주, DMZ, 잠실 등 전국을 유랑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뒤늦게 헌병대 수사과에서 군 복무 중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낙선. 제대 후 그 해 8월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으로 덜컥 등단해버린다. 그러나 글쓰기의 든든한 밑천은 군대에서 영창 간 수감자들에게 일기쓰기를 지도한 경험에서 나왔다. 이는 훗날 단편소설 ‘비상구’와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의 글감이 됐다.
낮에는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하다가 손님들과 싸움이 붙어 감옥에 들어오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탈영병이 돼야 하는 저간의 사정 등을 목도한 그는 그것이 바로 야생의 삶이라고 여겼다. ‘취향의 계급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때 생겼다.

■ 얼리어답터
대학원에 진학한 뒤 1991년, 그는 컴퓨터 통신을 시작했다. 이후 인간관계는 컴퓨터 통신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하이텔의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 문예 분과에서 활동했으며, 통신망을 통해 글을 발표하는데 새로운 흥미를 느꼈다.
애플 컴퓨터 사용도, 3년 째 이어오는 팟 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의 시작도 작가 중 그가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미국 맨하튼 소호에서 우연히 들은 팟 캐스트 강좌를 계기로 ‘뚝딱’ 하고 만들었던 것.
몽상‧산책․쇼핑․강연 등을 실컷 한 뒤 정말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하나씩 팟 캐스트를 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좋다. 최근 낭독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독자들이 수면용으로 쓰는 게 아닌가 하는 혐의가 짙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  베스트셀러 작가(?)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인생의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물었을 때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전거를 처음 탄 순간”이라고 했다. “일말의 불안감, 새로운 세계로 가는 경쾌함이 교모하게 얽혀 있어서”다. 흥분 혹은 불안하지 않으면 곧잘 싫증을 잘 느끼는 작가는 그러나 소설 쓰기는 참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늘 망했다는 심정으로, 그래도 끝을 맺자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무늬만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책 20여 종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중국, 네덜란드, 폴란드, 터키 등 12개국의 언어로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반면 1990년대부터 줄곧 그의 책을 펴낸 출판사 사장은 그를 두고 “명성은 있는데 실속이 없는 작가”로 분류한다. 베스트셀러가 분류될 법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오빠가 돌아왔다’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등이 이제껏 10만부를 넘긴 적이 없어서다. 스스로도 폭발적으로 팔리진 않으나 절판되지 않고 매년 꾸준히 찍는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 출판사 사장은 “매년 자기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거나 파괴하고픈 사람이 생겨나는 것 같다”며 객쩍은 농담을 하곤 한다.

■  고양이 홀릭
지난 4일 그의 페이스 북엔 이런 글과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2년 전 하늘로 간 ‘방울이’를 직접 그려 주문‧제작한 반팔 셔츠. 작가는 ‘방울이 2주기 기념 셔츠’라고 했다. 책 ‘랄랄라 하우스’를 보면 그가 키웠던 두 마리 고양이, 도도한 ‘방울이’와 식탐 많은 ‘깐죽이’ 입양기가 구구절절 소개돼 있다. 알츠하이머 비슷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그의 품을 떠난 ‘방울이’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무해한 어리석음으로 웃음을 주었고 지칠 줄 모르는 식탐으로 기쁨을 주었고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집 안을 빛냈다’. 지난해 ‘랄랄라 하우스’ 재발간을 기념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어리석고 식탐 많고 아름다운 고양이 방울이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까지 썼다. 그의 말마따나 사랑은 누군가를 바보로 만든다.

■  영화 이야기
소설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내 머릿속의 지우개’로 대종상 각색상,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같은 다방면의 활동을 두고 평론가 류보선은 그를 ‘잡식성’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도 한 때는 자신을 저주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3년 남짓 영화 감상기를 썼고, 담당 기자가 “영화 얘기에만 집중하라”, “우리는 쫀쫀하지 않지만 광고주는 쫀쫀하다”고 잔소리를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를 빙자해 자전적 수필로 써낸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는 피 끓게 통분할 이야기까지도 구름처럼 가볍게 주고받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이 잘 드러났다. 영화에 ‘아부’하지 않고 자기 매체의 독자성을 주장한 이 책을 보면서 두 작가는 “소설이 최고”, “만화가 최고”라고 했으나 행여나 베스트셀러가 될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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