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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케 커리큘럼 사용법
하네케 커리큘럼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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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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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신귀백
▲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1942년 독일 출신인 감독은 마흔 다섯의 비교적 늦은 나이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피아니스트’(2001)로 칸 영화제 남녀연기상과 심사위원대상을, ‘히든’(2005)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 ‘아무르’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2012) 수상.

■ 커리큘럼
영화 한 편이 대학 4년보다 낫다면? 조금 뻥이다. 하지만 머리를 얼음으로 내려치는 영화는 대학에서 배운 과목 하나보다 나을 수 있다. 때론 얼음송곳이 되는 미카엘 하네케의 일련의 작품들은 충성도 높은 지프광들에게는 교양 선택이 아닌, 당연히 ‘전공 필수’다.

좋은 교사가 그 자체로 좋은 교육과정이라면, 하네케의 필모그라피는 괜찮은 커리큘럼이다. 내면의 심연을 고찰하는 커리큘럼으로서 하네케는 사실 친절한 교사는 아니지만, 피할 길 없다. ‘자전거 탄 소년’을 선보인 다르덴 형제는 조금 따뜻해졌는데, 이 양반 아직도 골치 아픈 꼰대다.

하네케는 불편하다. 때론 비관적이다. 그는 우리의 자각하지 못하는 증상을 깨우지만 도덕과 교훈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제 지프에서 마주할 ‘성’과 다큐멘터리 ‘미카엘 하네케’를 앞두고 예습이든 복습이든 시간표를 짜 본다. 이사벨 위페르의 도발을 보여 준 ‘피아니스트’는 건너뛴다. 아래는 수준별 학습 커리큘럼.

■ 교양 필수

하네케는 ‘아무르’(2012)를 통해 선수만 알던 감독에서 민간인들도 제법 아는 감독이 되었다. 그러니 영감님의 심연 혹은 미궁 탐색은 아무래도 ‘아무르’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그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긴 만큼, 명불허전이다. 이 클래식이 교양 필수인 이유는 인종이나 금전, 고상하게 문화 이런 것 들먹일 필요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에 관한 보편적 정서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할매는 안락한 조명의 거실에서 프레스토 16분음표의 섬세함을 연주하던 제자 알렉상드르의 피아노에 기쁨을 표현한다. 그런데 할매가 이상하다. 경동맥이 막히는 질병이 도둑처럼 찾아온 것. 부드러운 목소리로 ‘메르시’라고 말하는 고운 노인은 고독할 줄 하는 자세를 갖추고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병은 깊어진다.

도둑이 들어도 인내할 줄 알던 영감님은 도둑같이 찾아온 아내의 뇌줄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자존감으로 가득 찬 할매는 헌신하는 남편 조르쥬(장 루이 트렝티냥, 아! ‘남과 여’의 주인공)에게조차 자신의 수치심과 무력감을 보이고 싶지 않기에 병원 가길 거부한다. 미동 없는 하네케의 카메라는 상호의존적이지만 독립적 존재인 독한 할머니의 심지를 닮았다. 반복되던 암전이 아예 어둠인 경우, 관객들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

영화는 묻는다. 평생 사랑한 아내가 갑자기 ‘변신’의 벌레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사랑의 가치는 무엇인가하고. 고독사가 사회문제인 지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노인의 세계는 있을 텐데. 늙음에 대한 준비는 100세 실손 보험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죽음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존재적 문제이기에 힐링하지 않고 관객들 스스로 알아서 고민하라는 것. 불편하지만 미덕이다.

■ 교양 선택

1차 대전 발발 직전 1913년,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순수와 복종, 종교적 엄격함이 주는 불안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다룬 ‘하얀 리본’(2009)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닥쳐오는 끔찍한 폭행 뒤에는 공동체의 비밀이 도사리고 있다.

지역 토호인 남작의 권한 앞에 온 마을이 순종하고 아이들은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내세운 종교 앞에 순종하지만 사실 마을은 광기로 가득 차 있다. 남작 내외의 이중적 사생활은 위선적이며 의사의 사생활은 추잡스럽고 목사는 아이들에게 숨 막히는 제제와 억압을 종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눈을 도려낸 사람은 누구일까? 교사가 진실을 밝히려는 순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청년이 쏜 총탄에 황태자 부부가 암살되는 1차 대전이 터지고 만다. 남작과 위선적인 어른들 위에 더 큰 폭력이 지배하고 마는 것. 그러니 폭력의 크기에 대한 우화일 수 있겠다. 이 우화는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는 듯한 미장센으로 마치 사진첩을 보는 듯한 형식미를 자아낸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하얀 리본을 매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 전공 선택

‘퍼니 게임’(2007)은 고문에 속한다. 1997년 작품을 2007년 하네케 자신의 작품을 복제한 리메이크 작. 해질녘, 클래식이 흐르는 별장에 찾아온 잘 생긴 이놈들은 주인장의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글쎄, 악마는 흰색을 입는가, 도대체 이놈들은 누구인가? 제3세계를 찾아온 유럽인들이 그들은 아니었을까 유추를 하기엔 섬뜩하다.

12시간 안에 일가족 모두 죽이는 게임을 벌이겠다(감독이 관객에게 게임을 권하듯)는 룰은 흰옷 입은 자들이 정한다. 우리는 감정을 이입하면서 가족들의 탈주가 성공하길 빌지만 영화는 자비를 보여주지 않는데. 죄 없는 이들이 자신의 별장에서 나사를 조이듯 벌어지는 이 레미제라블에 관객은 무력감에 빠진다. 범죄를 다룬 오락영화들을 볼 때는 죄책감이 들지 않으면서 왜 ‘퍼니 게임’을 보면 죄책감이 들까?

‘히든’(2005)의 오프닝은 고정된 카메라다. 깔끔하고 평화로운 중산층 주택가, 자동차, 행인들의 화면에는 소리가 없다. 여기 갑자기 소리가 끼어들면서 화면이 리와인드된다. 관객들은 주인공의 시점 그대로 같은 화면을 보게 되는 것. 이렇듯 ‘히든’은 특정한 쇼트의 시점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관객을 벙 찧게 만든다.

TV 문학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인 조르쥬는 어떠한 자료들도 자르거나 붙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집에 자신들의 일상사를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이 배달된다. 니들이 중산층으로 성장하면서 저지른 죄업을 털어놓으라고 비디오 테이프는 말하는 것. 테이프는 파도가 모래성을 조금씩 흔들어대듯 부부간의 신뢰를 조금씩 무너뜨린다. 잃을 것 많은 중산층 사람들은 항상 응급의 봉합으로 간신히 살아가는데….

40년 넘게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조르쥬의 평온한 삶은 사실 잊고 싶은 개인의 치부이자 바로 프랑스의 치부인 것. 마지드의 자살은 너무도 진지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찌 조르쥬가 프랑스 중산층만이겠는가? ‘정신 승리’ 방법으로 기억을 감추고 조작하는 모든 현대인들의 상징일 터.

‘일곱 번째 대륙’ (1997) 영감님의 데뷔작이다. 자동차 세차기 안의 소음과 침묵 그리고 파도가 이는 호주 어디 해변이 반복되는데. 차고가 개폐되는 소리, 도트프린터가 뱉는 기계음, 윈도우브러시 스치는 소리, 식탁에서 저작하는 소리 등 이 영화는 소리 백화점이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 클로즈업으로 반복되면서 심하다 싶게 잘리는 암전의 시간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그들의 대화라는 게 기껏 “낼부터 신문을 못 보내게 해야겠어.”다. 화면은 빵과 연장이 든 식탁은 비추어도 사람은 비추지 않는데.

이 남자 숨 막히는 독일이 싫어 호주를 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 액자를 떼어낸 자리의 히끗함 뒤 단추가 붙은 채 옷을 찢는, 쇠를 찢는 소리는 살아온 삶에 대한 복수렷다. “제가 후일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조용하고 내밀한 아이의 시선은 처연한 복선이다.

■ 특강 혹은 과외

▲ 영화평론가 신귀백

궁금하다. 세 차례의 약혼을 모두 파국으로 끝낸 남자, 보험국에서 일하다 폐결핵으로 죽은 남자 카프카. 그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소설 '성'(城)의 고독, 불확실성, 불안, 비이성을 경험한 K는 하네케의 영화 '성' (1997)에서 어떻게 형상화될까? 부조리한 세계에서 겪는 그의 투쟁, 종교성과 예언은 다시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건조하고 하드 보일드한 그의 목소리는 과연 어떤 결로 태어날까?

하네케에 중독된 선수에게 오스트리아에서 두 달 전 개봉된 다큐는 아주 따끈따끈한 작품이 될 것이다. 영화와 김수영으로 철학을 쉽게 풀이하는 철학자 강신주와 함께 하는 4월 28일 일요일 오후의 토크 클래스 ‘영화, 카프카를 만나다’는 고문 받은 당신들을 충분히 위로할 것이다. 이자벨 위페르가 말하는 인간 미하엘 하네케에 대한 코멘트가 궁금하면 '감독 미하엘 하네케' 티켓을 끊으시라.

둥글게 둥글게 손뼉을 치면서 환하게 웃으라고 고함칠 때, "링가링가링" 하면서 춤을 추는 시늉을 하며 극장에 가지만, 하네케 책걸이를 마친 우리는, 이제 ‘선수’다. /영화평론가 신귀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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