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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유권자는 원숭이가 아니다
지방선거, 유권자는 원숭이가 아니다
  • 이경재
  • 승인 2014.02.10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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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석논설위원
“정치인은 어디서나 똑같다. 그들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건설해 준다고 약속한다.” 비록 빌 공자 공약일지라도 공약을 늘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정치인들의 속성을 빗댄 말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쇄신 공약이 또 난무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에서 발원된 쇄신 공약은 실은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이미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터다.

진정성 있는 정치혁신 꼭 필요

대선을 한달여 앞둔 2012년 11월치 신문을 뒤적거리면 국회의원 특권 폐지,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 중앙당 권한 축소, 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폐지 또는 제한, 의원의 영리목적 겸직 금지, 기초선거 공천폐지 등을 여야가 앞다퉈 쏟아낸 걸 보게 된다.

이른바 정치쇄신 공약이다. 지난 1년 내내 정쟁에 몰두하다 결국 흐지부지되고만 공약들이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닥치니까 또 새롭게 포장된 정치혁신 과제가 쏟아지고 있다. 사과나 반성도 없이 엇비슷한 공약이 먹잇감으로 제시되는 건 국민을 희롱하는 짓이다.

권력자가 국민을 희롱하는 고사성어가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송나라 저공(狙公)이 원숭이 수가 늘자 먹이를 줄이기 위해 하루에 밤 일곱개만 주기로 했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적다고 항의했다. 그래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랬더니 원숭이들이 기뻐하더라는 것이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똑같은 말에 희롱당하는 원숭이를 국민에, 잔 술수를 이용해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저공을 정치인에 빗댄다면 과할까.

국민 눈높이의 정치혁신은 꼭 필요하다. 진정성이 문제다. 공약 채택은 신중해야 하고 한번 내건 공약은 이행해야 마땅하다. 대국민 공약을 ‘안되면 말고’ 식으로 아무렇게나 내뱉어선 안된다. 그건 헌 정치, 구태정치다.

안철수의 새정치 구호는 흡인력이 있다. “낡은 틀로는 아무 것도 담아낼 수 없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 새정치에 대한 갈증이 심한 터에 새정치 구호는 그 욕구를 충족시켰다. 안철수의 힘은 60년 정통야당을 추동시키고 집권여당을 긴장시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안철수가 없으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나 공천쇄신 등의 정치혁신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how to)가 없다. 추구하는 가치는 옳지만 어떻게 새정치를 할 것인지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슬로건 정치라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슬로건의 구체성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감언이설이고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는 동전의 양면이다.

지방선거가 넉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선거 룰도 확정되지 않고 있다. 정치개혁특위는 허송세월 하다 2월말까지로 활동시한을 한달 연장했다. 그런데도 합의되지도 않을 안건을 들고 나와 쇼를 하고 있다. 국민을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국민 희롱하는 정당·정치인 심판

출마 입지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공천문제다. 새누리당은 대 국민 공약인 기초선거 공천폐지 여부를 아직도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모양이다. 파기한 공약이 하도 많아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과연 공당으로서 영혼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솔깃한 공약들이 넘칠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또 까마득히 잊히고 말 것이다. 선거 때만 을(乙)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갑(甲)이 될 정치인의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원숭이를 희롱하는 저공 같은 정치인, 아무렇지도 않게 대 국민 공약을 파기하는 정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다.

선거는 검증이고 심판이다. 기억했다가 선거 때 심판하는 수 밖에 없다. 식언(食言)과 허언(虛言)을 밥 먹듯이 하면서 국민을 희롱하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심판해야 한다. 유권자가 원숭이처럼 희롱 당해선 안된다. 유권자가 갑인 경우는 선거 때 단 한번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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