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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선택한 기쁨
스스로 선택한 기쁨
  • 기고
  • 승인 2014.11.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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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호 전주동신교회 담임목사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라는 심리학자는 자아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자아는 물질적 자아라고 말합니다. 물질적 소유에 의해서 자기를 평가하면서 사는 존재를 말합니다. 내가 가진 것, 혹은 내 몸의 가치로 평가 받는 것을 물질적 자아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 자아입니다. 내가 누구의 친구냐, 누구의 자녀냐, 어느 회사의 사장이냐 그리고 어디 출신이냐, 어떠한 박사 학위를 가졌느냐 하는 사회적 관계와 그 역할에 따라 평가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평가는 영적 자아입니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외모로 할 것도 아니고 소유로 평가할 것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가운데도 영적으로 살지 못하고 철저하게 육신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도무지 신앙적인 모습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그 생각 자체가 아예 신앙적 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몇 년을 신앙생활 했느냐, 교회의 직분이 무엇이냐가 도무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잘못한 것이요, 인생을 잘못 살았습니다.

A. W. 타겟(Target)이라는 사람이 쓴 〈창〉이라는 단편 소설 가운데의 내용입니다. 어느 작은 병실에 두 남자가 입원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환자이고 또 한 사람은 디스크 환자였습니다. 디스크 환자는 수술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지만 폐암 환자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자리에 일어나서 창 밖을 내다보곤 했습니다. 병세로 보자면 폐암 말기 환자의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왜 그런지 늘 기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디스크 환자가 창 밖을 보고 있는 폐암 환자에게 도대체 밖에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와 백조가 한가로이 떠 있고 호숫가를 산책하는 연인과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보이네요.”

이 말을 듣고 있던 디스크 환자의 얼굴은 갑자기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폐암 환자의 얼굴에 늘 기쁨이 있는 까닭이 그의 침대가 창문 곁에 있어서 수시로 창밖을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고, 자기는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의 생각에는 빨리 폐암 환자가 죽어서 나가면 저 창가의 침대를 차지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폐암 환자가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신음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스크 환자는 비상벨을 눌러서 의사를 부를까 하다가 침대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 갑자기 옆 침대가 조용해졌고 고통 받던 폐암환자는 그의 기대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창문 곁 침대로 옮기게 되었고 그는 옮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침대를 붙들고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창 밖에는 회색의 콘크리트 담벼락뿐이었습니다. 그는 그제야 폐암 환자의 기쁨이 환경 때문에 생긴 기쁨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선택한 기쁨’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창조적인 상상으로 기쁨을 선택하며 마지막까지 기뻐할 수 있었던 그 사람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숱한 선택 속에서 살아갑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라는 본능적인 것에서부터 ‘극장을 갈까? 연극을 볼까?’라는 문화적인 선택, ‘이 사람을 택할까? 저 사람과 결혼할까?’라는 인생의 중요한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선택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만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기쁨과 슬픔도 선택에서 온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기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누구나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쁨이야말로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무엇을 잣대로 결단하며 살아가는냐에 따라 신앙인의 모습을 볼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환경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기쁨.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창조적 영적인 기쁨을 선택하며 마지막까지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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