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11-14 22:56 (수)
나를 내려놓고
나를 내려놓고
  • 기고
  • 승인 2014.12.30 23: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선명 원불교 덕진교당 교무

어느새 갑오년(甲午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출가하여 교무가 된지 벌써 이십 몇 년이 지나갑니다. 항상 출가 발원문을 올리던 초심을 잃지 않고 살리라는 다짐도 현실에 부대끼며 살다 보면 때로는 수행 일과에 게으름을 내기도 하고, 청정한 한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세속 사람보다도 더 못한 속내를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진정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비워 내지 못한 공부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익어 갈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을 보며 겸손함을 배우고,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들판을 바라보며 비워야 채워지는 이치가 있음을 배웁니다. 오늘 맹사성의 이야기는 저에게 경책의 말씀이 되어 가르침을 줍니다.

충남 아산 사람으로 조선 초기 청백리(淸白吏)의 상징이었던 맹사성은 정사(政事)를 위해 궁궐에 드나들 때에도 말 대신 소를 타고 허름한 집에서 살았다고 하지요. 그런데 과거에 급제한 초년의 그의 행적을 보면 그러지도 않았나 봅니다.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되니 맹사성은 자만심도 있었겠지요? 파주 군수로 부임하여 어느 날 고을을 순방하던 중 존경받는 선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답니다. “선사께서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을 하기를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 것뿐입니까?”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지요.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는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는데도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십니다” 맹사성이 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무명선사는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다관의 차를 따르더랍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무명선사의 이 한마디에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린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설주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무명선사가 맹사성의 뒤꼭지에 대고 일갈합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도망치듯 뛰쳐나온 맹사성의 심경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태산(少太山) 여래께서는 진리의 당체를 일원상(一圓相)으로 표현해 주시고, 일체 중생의 본성(本性)이라고 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든 중생의 근본 자리가 곧 부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의 삶 속에서 욕심에 끌려 살기 때문에 부처로 살지 못하고 죄고에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항상 사람과 만나고 일과 만나게 되는데, 우리는 본디 부처임을 믿고 늘 텅 빈 본래 마음에 대조하는 공부심을 놓지 않고, 현실의 삶에서는 시비이해(是非利害)라는 잣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是非)을 판단하고 다음에 이롭고 해로움(利害)를 가리면 됩니다. 그런데 자칫 이해시비(利害是非)의 잣대를 가지고 살려 한다면 전도(顚倒)된 가치가 되기 때문에 나와의 이해(利害)를 먼저 저울질 하게 되면 때로 양심을 속이게 되기도 하고 결국은 실패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항상 내 자신을 속이지 않고 텅 빈 마음으로 나를 비우고, 자리가 높아 갈수록, 가진 게 많아질수록 겸양하며 고개를 숙이면 부딪힘 없어 재앙도 피해 가는 것입니다.

대산종사께서는 “나 없음에 큰 나 드러난다”고 하셨지요! <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