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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50년 전북정치50년] ⑮ 15대 국회
[국회50년 전북정치50년] ⑮ 15대 국회
  • 권순택
  • 승인 2000.01.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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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국회는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에 따라 국회 주도권도 서로 뒤바뀌게 됐다.

전반기의 경우 여당인 신한국당이 무소속과 야당의원을 대거 영입, 과반수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정국의 주도권을 좌우했지만 후반기는 국민의 정부출범과 함께 국민회의.자민련의 공동여당이 탄생, 국회운영을 주도했다.

15대 총선은 96년 4월 11일 실시됐다. 전체 의석수는 2백99석으로 14대와 같았지만 지역구의석수는 14대때 2백37석에서 2백53석으로 16석 늘어난 반면 전국구의석은 62석에서 46석으로 줄어들었다.

선거결과 여당인 신한국당이 지역구 1백22석과 전국구 17석으로 합해 모두 1백39석을 얻었으나 과반수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국민회의는 지역구 66석과 전국구 13석등 79석을 얻었으며 자민련은 지역구 40석과 전국구 9석등 모두 49석을 획득했다.

이밖에 민주당이 지역구와 전국구에서 6석씩등 모두 12석, 무소속도 20석이나 당선됐다.

그러나 과반수의석확보에 실패한 신한국당이 무소속과 야당의원을 대거 영입, 개원시에는 총 1백51석에 달해 과반수를 넘겼다.

이에따라 당초 법정 개원일인 96년 6월 5일 개원식을 가질 예정이였지만 선거부정과 의원빼내기문제가 불거지면서 여.야가 서로 대립, 파행으로 치달았다.

우여곡절끝에 7월 4일 개원국회가 열려 전반기의장에는 신한국당 김수한의원이, 부의장에는 신한국당 오세응의원과 국민회의 김영배의원이 각각 당선됐다.

후반기 의장에는 자민련 박준규의원이, 부의장에는 국민회의 김봉호의원과 신한국당 신상우의원이 당선됐다.

16개상임위원장과 2개 특별위원장에는 신한국당이 운영위와 법사위원장등 모두 10자리를 차지한데 이어 국민회의에 5자리, 자민련에 3자리를 각각 할당했다.

도내 의원가운데는 김태식의원이 농림수산위원장을 맡았다.

국회는 문민정부 말기인 97년 2월 한보사건과 관련 국정조사를 실시키로 여.야가 합의하고 위원장에 현경대의원등 모두 19명의의원으로 특위를 구성했다.

3월말부터 5월초까지 45일간 실시된 한보사건국정조사는 한보철강과 관련된 인허가.공유수면 매립. 거액대출및 부도처리 수습대책. 이 과정에서 외압여부. 김영삼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의 국정개입여부등에 대한 조사활동을 폈다.

국정감사결과 한보철강인허가과정에 문제점이 발견됐고 비자금이 정치권과 은행장에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김현철씨의 국정개입여부는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종료됐다.

한편 97년 12월 15대 대선에서 국민회의 김대중후보가 당선, 사상 최초로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98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앞 광장에서 김대중대통령이 취임,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다.

이에따라 국회도 여당인 국민회의가 안정의석확보를 위한 의원영입에 적극 나서 정당별 의석수는 국민회의 1백5석, 자민련 55석으로 공동여당이 과반수의석을 확보했다. 한나라당은 1백34석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15대 국회 후반기에 들어서 옷로비사건과 파업유도발언이 파생되면서 여.야간 정쟁이 심화됐다. 마침내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시행됐지만 제대로 실체를 규명하는데는 한계가 많았으며 결국 특별검사제가 도입, 특검이 실시됐다.

한편 97년 4월10일부터 15일까지 국제의회연맹(IPU) 제 97차서울총회가 1백21개 회원국과 2개 준회원국가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IPU총회 결의안으로는 세계및 지역의 안보.안정과 국가의 주권.독립의 존중협력및 예루살람의 성도지위 보장, 알바니아와 자이레의 비상사태에 대한 국제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한반도문제의 총회의제 상정및 4자회담촉구, 대만핵폐기물의 북한이전 금지촉구, 종군위안부문제의 세계적인 관심을 제고시켰다.

◈ 도내 15대 국회의원

50년만에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로 15대 국회에 들어서 전북정치권도 정국운영에 핵심역할을 맡았다.

도내출신 대다수 의원들이 핵심당직과 국회직을 차지, 그 역량을 한껏 발휘했던 것이다.

국민의 정부 초반기에 고창출신 정균환의원이 집권여당 사무총장을, 전주덕진 정동영의원이 대변인, 익산갑 최재승의원과 정읍 윤철상의원이 조직위원장, 김제 장성원의원과 무진장 정세균의원이 제 2.3정책조정위원장, 전주완산 장영달의원이 안보위원장, 남원 조찬형의원이 윤리위원장, 부안 김진배의원이 연수원장을 맡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완주출신 김태식의원이 국회 농림수산위원장을, 익산을 이협의원이 문화관광위원장을, 장영달의원이 국방위간사, 박정훈의원이 예결위와 재경위간사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이후 정균환사무총장이 총재특보단장과 새천년민주당 조직위원장및 조직책선정위원장을, 정동영의원이 민주당청년위원장, 최재승의원이 민주당기획단장을 맡아 신당창당의 산파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전북출신 한광옥의원이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이와함께 야당으로 출마, 호남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군산을출신 강현욱의원도 초선이지만 한나라당 당무위원과 정책조정실장, 정책위의장을 맡는등 당내 비중있는 역할을 다했다.

이같이 도내 인사들이 정권핵심부에 진입함에 따라 전주광역권 선정과 신공항건설등 지역개발사업및 예산지원에 큰 힘을 발휘하는등 전북정치권의 위상이 한층 강화됐다.

이에앞서 96년 4월 11일 실시된 15대 총선에서는 지역감정여파가 여전히 맹위를 떨쳤다.

후보등록결과 군산갑과 김제, 임실순창에서 각각 7명씩이 등록,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전주덕진과 고창에서는 여.야후보 1명씩만 등록했다.

13.14대에 이어 국민회의가 초강세를 보여, 도내 14개 지역구가운데 군산을에서만 야당에 의석을 내줬을뿐 13개의석을 휩쓸었다.

전북정치 1번지인 전주완산에서는 국민회의 장영달의원이 재선고지에 올랐으며 전주덕진에서는 도내 최다 득표로 국민회의 정동영의원이 당선됐다.

군산갑에서는 국민회의 채영석의원이 3선을 이룩했고 군산을에서는 한나라당 강현욱의원이 호남에서 유일하게 당선, 이변으로 기록됐다.

익산갑에선 국민회의 최재승의원이 재선했고 익산을에선 역시 국민회의 이협의원이 3선을 달성했다.

정읍에선 국민회의 윤철상의원이 민주당 간판을 달고 나온 김원기의원을 눌렀고 남원에선 국민회의 조찬형의원이 재선했다.

김제에선 국민회의 장성원의원이 원내 첫 진출했고 완주에선 국민회의 김태식의원이 4선 위업을 이룩했다.

무진장에선 국민회의 정세균의원이, 임실.순창에선 국민회의 박정훈의원이 국회에 처음 진출했다.

고창에선 정균환의원이 이 지역 최초로 3선의원이 됐으며 부안에서는 김진배의원이 재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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