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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책이다
사람이 책이다
  • 기고
  • 승인 2015.04.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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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순 완주군 중앙도서관장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안방에는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 좁은 책상에서 틈틈이 성경책도 읽고, 농사일과 관련된 장부도 정리했다. 가끔 보면 아버지는 두꺼운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써내려가기도 했다.

아버지는 성경책이나 장부는 책상에 두거나 책꽂이에 꽂아서 보관했는데, 그 노트만은 장롱 위에 올려두었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가 멀리 출장 가신 틈을 타 의자를 딛고 장롱위에 있는 그 노트를 몰래 들추어 보았다. 마을의 크고 작은 일상, 자식 교육에 대한 고민, 일가친척들의 근황, 감사하는 마음, 삶의 고단함과 아쉬움 등 당신이 평소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그 노트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자신과 대면하고 계셨던 것이다. 완벽한 줄 알았던 아버지의 고독하고 불완전한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선한 인연 많이 만나 행동범위 넓혀야

그날부터 나는 가끔 그 노트를 몰래 읽었다. 어떤 때는 마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을 때처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아버지는 감사와 성실함, 자기성찰의 자세를 몸소 가르쳐 주신 한권의 책이었다.

완주군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북적북적 페스티벌〉에서 ‘휴먼 라이브러리, 사람이 책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듯 사람과 사람이 마주앉아 이러저런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천문학자, 도서관장처럼 다양한 직업과 가치관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사람 책’으로 초청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의 저자인 이근후 박사도 그중 한 분이었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의 고민을 듣고 도와주었던 경험담을 아버지처럼 친근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마음을 유연하게 하고 생각을 단순화하며 나눔으로 이어진다면 축복받는 삶이라고 했다. 사람은 부모나 스승으로부터 받은 학습된 습관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간다. 사는동안 선한 인연을 많이 만나 행동 범위를 지혜롭게 넓혀가야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내가 사는 세상인 것이다.

책이라는 활자는 독서가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다. 반면 사람책을 만나면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궁금증이 풀리고 새 것이 뾰족하게 솟아 오른다. 책 속의 주인공, 저자들이 여러 모습으로 인간모형을 보여주듯이 사람과 사람의 일생이 만나며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책은 한권 한권이 하나의 세계다’고 말했다. 어디 책뿐이랴. 사람도 하나의 세계이고 책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참 다양한 책도 많고, 만나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이다.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프레드릭 ‘ 같은 그림책이 있는가 하면, 봄비처럼 촉촉하게 와 닿는 시집도 있다. 사랑과 배신, 복수와 화해를 그린 소설책도 있다. 소소한 일상이 그려진 에세이집도, 생각을 덜어주는 철학 책도 있다.

만남 통해 수많은 지식과 지혜 얻어

이웃과의 나눔을 적극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에 자신만 우뚝 서 있어 타인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배우진 못했지만 배려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도 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이들도 많다.

내가 책이라면 “어떤 파동과 감명을 주는 사람 책이 될 수 있을까?”

봄비를 머금은 작은 들꽃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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