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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지키는 것, 안전혁신의 시작
기억하고 지키는 것, 안전혁신의 시작
  • 기고
  • 승인 2015.04.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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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응 매뉴얼 머리에 넣지말고 몸으로 익혀놔야
▲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어느새 한 해를 건넜다. 부끄럽고 참담한 나날은 멀고도 길었다.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살아있는 자의 마음은 취객처럼 흔들렸다. 우리에게 지난 1년은 ‘세월호’가 안긴 질문과 과제에 대한 참회의 답변을 마련키 위해 안간힘을 쓴 시간들이었다.

총체적인 진단이 이어지면서 국가 개조 수준의 처방들이 쏟아졌다. 해경이 해체되고, 안전행정부의 ‘안전’영역이 국민안전처라는 새로운 컨트롤타워에 맡겨졌다. 지난달 30일, 정부가 발표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은 그와 같은 진단과 처방을 아우른 국가 재난대응 전략의 종합판이었다.

정부 17개 유관 부처와 기관이 함께 마련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에는 크게 △재난안전 컨트롤기능 확립 △재난현장 대응역량 강화 △생활 속 안전문화 확산 △재난예방 인프라확충 △분야별 안전관리 추진 등 5대 추진전략과 100대 세부과제가 담겼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약 30조원을 현장 안전 확보와 사전예방 및 점검시스템 구축, 안전교육 강화 등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종래보다 진전된 방안이라는 설명이 잇따랐다. 이곳저곳 산재되어 있던 재난 관리 업무가 국민안전처로 수렴되면서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재난관리 체계를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 첫째다. 자연재난 위주의 보상체계를 화재나 붕괴, 폭발 등 각종 사고와 테러를 아우른 사회재난으로 확대한 것과, 모든 재난 상황에 대응해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재난관리 표준체계’, 이른바 ‘올인원(All-in-One) 매뉴얼’을 마련했다는 점도 과거보다 나은 차이다.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난사태 선포권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주어 현장의 판단을 존중하고 책임을 강화하도록 한 것 또한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 일반의 평가다.

특히 이번 마스터플랜의 내용 속에는 국민 생활안전과 직결된 전기, 가스 등 에너지 시설에 대한 선제적 방어 계획도 포함되어 있어, 관련 업무를 이끌어나갈 필자의 관심과 기대는 더욱 크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세월호를 비롯한 많은 재난 사고들이 단지 인력이나 장비가 부족해서, 시스템이나 매뉴얼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해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나, 120명 이상 사상자를 낸 의정부 아파트 화재, 그리고 얼마 전 있었던 강화도 캠핑장 화재사고에 이르기까지, 국민안전처 출범 이후에도 대규모 재난안전 사고는 끊이질 않았다. 대부분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인재(人災)였다.

안전의 기본은 ‘잊지 않고 기억하며 지키는 것’이다. 예방이든, 대응이든 머리가 아닌 몸이 스스로 알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익히는 것보다 확실한 안전대책은 없다. 재난대응 매뉴얼이 아무리 완벽하다해도 이를 체험하고 기억해 올바르게 지키지 못한다면 이는 물젖은 휴지뭉치와 다르지 않다. 안전에 있어 시스템이나 제도보다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이 예방을 위한 교육이고, 대응을 위한 훈련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다. 4월의 한가운데, 봄이 다시 왔지만 우리네 마음은 아직도 깊은 겨울이다. 삼백네 송이의 저문 꽃잎들과 미처 오르지 못한 아홉 영혼들이 진도 앞바다를 떠돈다. 안전혁신은 살아있는 자들의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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