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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의 명품 김치
경찰관의 명품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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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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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있을 꿈을 어느날 불쑥 찾아온 그로 인해 꾸게 된다
▲ 장석원 전북도립미술관장
경찰관 한 명이 미술관을 방문했다. 신문 칼럼을 보고 만나고 싶었다는 이유로 40km를 넘게 달려왔다.

우리는 인간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 음식 솜씨를 익혀 김치를 잘 담근다는 말을 했다. 내가 먹어본 김치 중에서 어머니가 담가 주신 김치처럼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 게 없었다는 말에 그는 웃으면서 자신의 김치를 맛보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날 밤 늦게 누군가 벨을 눌렀다. 누구시냐는 물음에 ‘관장님’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3개의 작은 김치 통을 들고 서 있었다. 잠깐 들어오시라는 권유에도 곧장 가겠다는 그를 근처 카페로 안내해 차를 마셨다.

그는 문화 예술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지금쯤 버렸을 꿈을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가슴 가득 품고 있었다.

청두(成都)에서 만났던 펑정지에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주연이 되어 미술관을 방문했다.

청두 화실에서의 그는 손에 쿠바산 시가를 들고 있었고 손님용 소파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성공한 예술가답지 않게 먼발치로 본 그의 레드 카펫을 밟는 모습은 좀 쑥스럽고 어색한 표정이었다.

미술관에서 나는 그를 청두에서 봤을 때보다 전주에서 더 국제적인 예술가처럼 보인다고 놀렸다.

그는 그의 그림이 프린트된 핸드폰 덮개를 선물했다. 나는 ‘1980년대와 한국미술 도록’ 1권 그리고 나의 평론집을 선물했다. 그는 미술관 전시로 다시 전주를 오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는 끝내 대답을 미뤘다. 그러나 오늘 밤 그가 출연하는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라는 영화를 먼저 볼 생각이다.

일요일 밤, 인터넷 바둑을 한 판 두던 중 누군가의 벨이 울렸다. 다시 ‘관장님’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였다. 그는 더 커 보이는 김치 통 하나를 들고 서 있엇다.

이번에는 집안으로 모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와 직급을 떠나 친구처럼 대하는 게 좋아서 다시 왔다고 한다.

나는 불교 선배와 지리산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2박 3일 등반하고 싶은 꿈을 이야기했고 그는 비염으로 고생하다가 직지사 근처의 한의사에게 치료받은 얘기를 했다. 나는 낮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김남규 의원과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분은 그날 이미 4개째 영화를 보고 있더라는 얘기를 해줬다.

그리고 그 영화(인 더 크로스 윈드)는 나의 가슴을 너무 먹먹하게 했다. 그는 소양의 한 스님을 같이 만나고 싶다고 했다. 다 꿈 같은 얘기다. 현실이 꿈 같고 꿈이 현실 같기도 하다.

어느 날 나는 아내와 함께 직지사 근처의 한의사를 찾게 될 것이다. 아내의 소원대로 발효 소금 하나를 사서 차에 싣고 돌아올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그와 함께 소양의 한 스님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있을 꿈을 나는 그로 인해 꾸게 된다. 그는 나의 친구이다. 경찰관이라는, 김치도 잘 담그고, 중국집에서 독한 고량주를 마시길 좋아한다는 그는 어느 날 다시 벨을 누르고 웃으면서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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