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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과 미당의 시를 잊지 말아야할 이유
미당과 미당의 시를 잊지 말아야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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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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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하 전주MBC 보도국 선임기자
올해가 미당 탄생 백주년이다. 정확히는 다음달 7월이라 한다. 미당이 누구인가? 한국 사람이면 학창시절 누구나 암송했을 ‘국화옆에서’의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질마재, 고창이 고향인 시인 서정주의 문학적 업적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을 몇 가지만 보자.

“김소월과 더불어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시인. 한국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 시의 정부. 그 어느 시점까지는 이의제기가 불가능한 한국 최고”였다.

고창 출신 서정주 시인 탄생 100주년

그러나 그의 걸출한 문학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의 친일행적과 전두환 군부정권에대한 찬양시로 미당은 비난과 단죄의 대상이 되었다. 줄곧 한국문학계에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가 시인으로서의 문학적명성과는 별도로 그의 정치적 선택은 그 자신, 그리고 한국의 문학사에도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러운 역사가 되고 말았다.

이 두 가지의 충돌은, 미당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동전의 양면처럼 명암을 드리운다. 그의 친일과 정치적 과오가 부각되면서 아예 미당의 존재가, 미당의 시가, 우리에게 사라져가고, 잊혀져가고 있다. 그의 탄생 백주년을 즈음해서 미당문학회가 올해 초 발족이 되고 관련 행사들이 진행된다고는 하나, 존재감이 없다.

미당 스스로 인정했던 과거행적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그의 존재, 그의 시를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하리라. 일제 강점기 일본육사출신 박정희의 친일논란을 보자. 그가 60~70년대 한국을 산업화로 이끈 업적을 함께 평가하는 작업이 논쟁을 거듭하면서 그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듯이, 5차례에 걸쳐 노벨문학상후보에 추천됐던 미당의 문학적 업적과 그의 과오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적어도 그의 출생지인 우리지역사회에서의 토론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달 전쯤, 양철북의 저자로 국내에도 유명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전후 독일의 대표 지성인으로 꼽히는 귄터그라스가 세상을 떠났다. 귄터그라스 스스로 2006년 자신의 자전적 소설을 출간하면서 자신이 나치 친위대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해 충격을 주었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여류시인으로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폴란드의 어두운 현대사를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1950년대 중반까지 폴란드는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었고, 그녀는 공산정권에서 요구하는 대로 선동적인 경향의 작품,두 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굳이 이 두 가지 사례를 내놓은 것은, 서구사회가 갖고 있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평가 작업이 우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하는 것이다. 귄터그라스와 쉼보르스카가 그들 사회에서 어떻게 그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비판받고 평가받았는지, 미당을 기리는 쪽이나 그의 과오를 비판하는 측이나, 깊이 있게 들여다 볼 부분이다. 문학적 깊이가 얕은 나로서는 독일과 폴란드사회가 한 노벨상수장자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어떤 논쟁과 토론을 거쳤는지 전문가들의 토론을 기대할 뿐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재조명이 더욱 필요한 백주년 해이다.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업적과 과오 깊이 있게 들여다 봐야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미당의 친일과 정치적 과오로, 그의 존재가 잊혀져서는 아니될 일이다. 아니, 그의 친일과 과오를 잊지 않기 위해서도 그를 잊어서는 안된다. 박정희에 대한 친일의 기준과 미당의 기준은 어떠한가? 산업적 성과와 문학적 성과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당 탄생 백주년에 즈음하여 미당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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