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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을 경계한다
포퓰리즘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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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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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의식수준 높아져 / 표는 숫자가 아니라 마음 / 표심 읽는 자가 권력 잡아
▲ 장석원 전북도립미술관장
한국의 정치는 표이다. 표를 얻어 정권을 쥔다. 표를 얻으려면 민심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에 모든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에 젖어든다.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는 정책은 재정적 부담이 커지면서 점점 더 가중되는 압박에 시달린다.

오늘의 포퓰리즘이 갖는 문제는 복지 혜택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문화, 예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찾아가는 미술관 역시 그 하나이다.

예술적 환경이 열악한 곳을 찾아가서 제대로 된 전시를 열어주는 행사, 취지도 내용도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이런 행사도 일방적이라면 곤란하다. 매년 신청만 하면 무료로 찾아가서 열어주는 행사는 김빠진 느낌을 준다.

그 혜택을 받는 사람도 감동을 받지 못한다.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이미 의례화 되어버린 거래, 간절한 바람도 보람도 점점 사라져 간다.

사회 저변층의 문화 욕구가 일차원적인 것으로 단정하면 착각이다. 베풀 듯 주는 혜택은 아무런 감동이 따르지 않는다.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했던 마오쩌뚱은 평생 황제처럼 살았다. 농업정책에 실패하고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에 그는 홍위병을 동원해서 정적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가 축출했던 덩샤오핑이 복권하여 경제적 번영을 주도했던 것도 아니러니 하다. 계속해서 가난한 평등만을 구가하고 지냈던들 오늘날의 경제적 번영을 도출해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많은 모순과 불평등 속에서도 중국의 경제는 팽창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해 무조건적 혜택을 베푸는 것보다 감동을 주는 방향으로 방향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표는 부풀려져서 다가온다.

유권자들의 수준 역시 높아져서 웬만한 선심에는 감동을 느낄 수 없다. 문화, 예술 행사 만해도 질적인 고양과 방향성 등이 중요 해진다. 늘 볼 수 있는 그림을 또 한 번 봤다고 감동이 있을 수 없다.

다소 비용을 치르더라도 보고 싶었던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하다. 그것은 유권자들에게 예술의 중요성과 국제적 의미에서의 방향성을 제대로 인식시켜 주는 것,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실감시킬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내일의 희망이 있다면 오늘 굶는 것을 참을 수 있다. 내일이 불안하면 오늘 먹는 것이 두려워진다. 표는 숫자가 아니라 마음이다. 진정으로 표심을 읽는 사람이 권력을 쥔다.

설사 선거에서 지더라도 표심에 깊게 다가가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온갖 계책과 자본으로 준비된 식상한 접근보다는 다소 무모해 보이더라도 정직하게 유권자들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던질 줄 아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과거처럼 민주화 투쟁의 명분도 없어진 시대에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도 먹히지 않는다. 감옥을 다녀온 투쟁 경력이 표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표심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 걸핏하면 ‘국민을 위해…’를 되 뇌이던 정치인들은 퇴출당할 것이다. 사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 치고 국민을 위하는 사람별로 본 일이 없다. 표는 마음이다. 권력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지지를 얻는 자가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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