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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출신 허소라 시인 '이 풍진 세상'] 팔순 즈음에 느끼는 인생무상
[진안 출신 허소라 시인 '이 풍진 세상'] 팔순 즈음에 느끼는 인생무상
  • 이세명
  • 승인 2015.06.19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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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8번째 시집 / "유서 쓰듯 서문 작성"

팔순에 다다르는 시인이 ‘바람만 조금 불어도 흔들리고 마는, 오 가냘픈’ 자신의 ‘몸에게’말한다. ‘우리가 만난 지도 어언 이순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밤낮으로 봉사해온 너를 위해 너의 가장 단단한 곳에 내 유언을 새겨놓았으니 비록 우리가 헤어진다 해도 너를 흙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 내가 새 되어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날 너는 다른 사람의 눈이 되고 심장이 되고 골수가 되어 다시 태어나리라’

시인은 타국인 중국 연변에서 쇠한 몸에 감기까지 얻자 늙음에 잇닿은 죽음을 떠올렸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도달한 지점은 인생무상이다. 근대 가요 ‘희망가’의 앞 부분을 따온 ‘이 풍진 세상’에서 ‘우리가 굳이 떠밀지 않아도/겨울이 떠나고/우리가 굳이 손짓하지 않아도/봄은 저렇게 절룩이며 오는데/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다. 시간에 따른 자연의 순환은 끝없다. 인간도 생성과 소멸의 굴레 속에 속한 존재일 뿐이다. ‘지난 폭설에도, 산불에도/온전히 죽지 못하고 썩지 못한 것들’이다. 이 존재는 ‘마침표 없이 출렁이는 저 파도 속에/떠밀려 가는데/비로소 큰 눈을’ 감는 곳에서 ‘발을 구르는 자 하나 없더라/기록자 하나’없었다. ‘그때 우리 모두는, 멱살잡이였으므로/남과 북, 동과 서, 이웃과 이웃이/질펀한 싸움판이었으므로/그 속의 골리앗이었으므로’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는 노시인의 깨달음이다.

허소라 시인(79)이 약 20년 만에 8번째 시집 <이 풍진 세상>(신아출판사)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5부분으로 나눠 57편을 담았다. 제1장은 그가 평소 두었던 시대적 역사적 관심사를 소재로 했다. 이 가운데 ‘해빙기’, ‘비의 곡’ 등 몇 편은 애정이 넘쳐 다시 실었다. 제2장은 지리산, 전주, 선은리에서 얻은 단상을 실었다. 제3장은 지난 2000년 중국연변대학에서 1년간 조문학부 강의를 하던 체류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제4장은 2000년대 들어 헌사(獻詞)했던 작품을 모았다. 마지막 제5장은 다른 신앙시집에 수록됐던 시를 덧붙였다.

허 시인은 머리말에서 “첫 시집 <목종>을 세상에 내놓을 때는 최초의 연서인 양 무척이나 수줍고 설레였는데 약 20년 만에 내놓는 8번째 시집의 자서를 쓰려니 마치 마지막 유서를 쓰고 있는 듯 만감이 교차한다”고 밝혔다.

시대의 양심을 읊었고, 첫사랑의 꿈이 어려 있는 산문으로 20대를 보낸 그였지만 이제는 “생애 마지막 시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라는 게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할 때는 보석을 찾는 것처럼 했었다”며 “시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서는 안 되기에 마지막 시집이라는 생각으로 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문학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그들이 염원하는 일에 동참하고 고뇌하는 일일진대, 남은 생애에도 이 점을 명심코자 한다”고 덧붙였다.

작품 해설에 나선 오하근 문학평론가는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노년을 내색하다가도 이내 이를 망각한다”고 설명한다.

오 평론가는 “그가 살아온 풍진 세상을 읊을 때는 시대를 증언하고 그 능욕의 구렁텅이에서 시대를 건지려 노력하고 때로는 젊은이의 기지와 풍자로 시대상을 조명한다”면서도 “노년의 예지와 기독교의 사랑을 설교하듯 평화와 평등을 설파한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그는 “시인은 궁극적으로 나이를 무화시켜 한 세상의 평균 나이로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와 당위적인 사상을 노래한다”고 덧붙였다.

허소라 시인은 진안 출신으로 전북대 국문학과 졸업를 졸업했다. 이후 고려대와 경희대에서 각각 석사·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59년 <자유문학>에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목종(木鐘)>, <풍장>, <아침 시작>, <겨울밤 전라도>, <누가 네 문을 두드려> 등, 수필집 <흐느끼는 목마(木馬)>, <파도에게 묻는말> 등이 있다. 전라북도문화상, 풍남문학대상, 모악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군산대 교수와 석정문학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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