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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어난 한 송이의 국화꽃
다시 피어난 한 송이의 국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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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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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그냥 가슴이 아니라 저 아래 창자에서 우러나와 가슴과 머리를 거쳐야 하네
▲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지난 6월 30일은 미당 서정주 시인이 탄생한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연초부터 기념행사들이 이어지면서 미당의 100세 생일을 하루 앞둔 29일 저녁 특별한 시(詩)잔치가 마련됐다. 『미당 서정주 전집』 (전 5권)출판기념회가 서울 필동 동국대 본관 중강당에서 열렸다. 미당이 별세한 뒤 처음으로 나온 950편 정본 시전집으로, 전 20권 규모로 기획한 첫 결과물이다. 출판사는 내년 상반기까지 시는 물론 자서전, 산문, 시론, 방랑기, 옛이야기, 소설, 희곡, 번역, 전기 등 미당의 저서를 총 망라한 전집들을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그의 생애는 굴곡과 명암이 엇갈리고 있지만 미당 만큼 모국어를 정제하고 광을 낸 이가 또 있을까? 그의 시는 우리 시대 한국어의 위대하고 오묘한 성취로 인정받는다.

요즘 한 작가의 표절시비가 문단을 시끄럽게 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문단의 표절시비는 어느 한사람에 그치지 않았다. 문예지에 등단작품, 신춘문예 당선작품에서부터 중진문인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표절 문제가 불거지곤 했는데 그러나 그때마다 쉬쉬하며 유야무야 넘어가곤 했다.

우리 문학 교육에도 문제는 있다. 문학을 가르치고 문인을 길러내야 할 일부의 대학, 평생교육원, 문화센터, 기성문인들의 사숙 등에서 속성으로 문학기술을 가르쳐 문단에 내보내는 일이 많이 있어왔다.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이들은 문학공부보다 등단이 목표다. 진정한 문인은 만나기 힘들고 문학기술자가 넘치는 우리 문단의 이런 풍토 속에서 표절시비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치러진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의 시잔치는 우리 문단의 큰 자랑이며 위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축사로 나선 이어령 선생은 미당 생전에 육성으로 시를 들었던 기억, 미당이 직접 작성한 육필시선을 첫 출간했던 영광, 미당의 고희연 때 강연을 했던 경험과 함께 이날 축사를 맡게 된 점이 모두 자랑거리라고 했다.

사실 미당과 같은 시기에 태어나 그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문학도인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고 영광이었다.

남현동 2층 사랑방에서 홍신선, 정의홍 등과 함께 앉아 미당이 주시는 청주를 받아 마시며 시를 이야기하고 문학을 말 하던 기억은 내 개인에게 있어서 빛나는 역사요 교훈이다.

‘난 말야 대통령은 바빠서 못하겠고 한가한 부통령이나 하라면 하겠네 하하하...“

유유자적과 여유가 멋있었던 분.

“시는 말야 그냥 가슴이 아니라 저 아래 창자에서 우러나와 가슴과 머리를 거쳐야 하네”

시에 대한 치열함으로 뜨거웠던 분.

그리고 술상을 물리고 돌아갈 때 대문까지 따라 나와 “시인 나가신다” 하며 격려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던 분.

선생의 시와 말씀 속에 담겨있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지혜는 우리 겨레의 자랑거리요,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백건우 윤정희 커플의 피아노 연주와 시낭송을 비롯해 시인, 배우, 낭송가 등의 시낭송이 어우러진 격조 높은 행사는 참석한 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고 간행위원들이 미당의 옛 모습이 담긴 대형 스크린 앞에서 시전집을 헌정하고 절을 올리는 모습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지워지지 않는 그림이 되었다.

△문효치 이사장은 1966년 서울신문·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 주성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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