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11-19 10:15 (월)
신정일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길에 얽힌 사연들 이야기 주머니 되다
신정일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길에 얽힌 사연들 이야기 주머니 되다
  • 이세명
  • 승인 2015.08.28 23: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내 구석구석 담긴 역사·문학 담담히 풀어내

도보여행가이자 문화사학자인 신정일 씨(62)가 도내 곳곳을 누비며 역사와 문학을 들려주는 신간이 나왔다.

지난 4월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에서 조선시대 사대부의 비가(悲歌)를 통해 선비의 인간미를 드러냈던 그가 이번에는 역사, 사찰, 길, 자연 등 4부로 나눠 길에 얽힌 사연과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신아출판사)을 출간했다.

저자는 “운명처럼 길 위에 나섰고, 걷다가 보니 길이 되었다”며 옛이야기를 전한다. 걷기를 통해 ‘고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자아가 자연스레 마주하는 사색 끝에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드러난다.

‘내 마음의 명당’이라 소개한 역사 부문에서는 남원의 진산인 교룡산에서 동학의 창시자 수운 취제우의 시 한 편으로 길을 나선다. 수운이 교룡산성 안에 있는 선국사의 암자 은적암에서 8개월간 머무는 동안 그는 ‘칼노래’와 <논학문>을 지으며 동학의 핵심사상을 완성한다. 또한 이 기간 지역 유생, 스님과 문답을 나눈 일화도 소개한다. 결국 수운은 칼노래로 ‘국가의 정사를 모반한 죄’로 사형을 당한다. 후에 선각사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김개남 장군이 집강소를 설치한 곳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부안이 낳은 시인 이매창과 그의 연인 유희경, 소울 메이트(soulmate)였던 허균과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도 이들의 시와 곁들여진다. 이어 발걸음은 산경표를 정립한 신경준이 살았던 순창, 후백제의 도읍지 전주산성을 지나 통일신라시대의 석축산성인 전주 남고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설파한다. 마음이 편안한 명당으로 꼽은 변산의 우반동, 군수 최치원의 자취가 남은 정읍 태인도 빼놓을 수 없다.

바다쪽으로 향해 군산에 다다라서는 옛 지명인 진포를 통해 최무선이 화포로 왜군을 물리친 승전지의 역사와 함께 일제 강점기 수탈의 흔적도 짚는다. 일본인 농장주 시마타니가 자기 정원을 꾸미기 위해 완주군 고산면 봉림사 터에서 가져온 유물을 가져오거나, 해방 뒤에도 봉림사 터 인근에 있던 삼존불상이 전북대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 수난사도 알 수 있다.

이어 사찰 편에서는 꽃비에 취하는 완주 화암사, 가는 길의 벚꽃이 아름다운 완주 송광사, 선운산 자락의 선운사, 미륵신앙의 이상 세계를 조성했던 익산 미륵사지, 김제 귀신사, 남원 실상사, 부안 내소사 등을 걸으며 절의 창건부터 주요한 사건과 인물까지 아우른다. 진안 마이산 탑사에 이르러서는 속금산이라 불리던 연유와 이성계가 왕의 꿈을 키우던 성지임을 일깨운다.

저자가 걷기 좋은 길로 꼽은 곳도 소개한다. 섬진강 따라 진안 풍혈냉천에서 용포리까지의 길과 바람으로 머리 빗질을 하며 걷는 울창한 숲길인 전주 건지산 길, 여기에 무릉도원이 펼쳐지는 무주 금강길도 빠질 수 없다.

그는 만나는 산봉우리와 흐르는 강물마다 수 백년간 이어진 길을 걸으며 선현과 문학에 대한 지식을 들춰낸다.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자연과 삶에 대한 평소 지론을 드러낸다. 그는 강, 산의 소중함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의미인 산을 조선 후기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의 기록에서 찾는다. ‘산기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산을 오른다 하지 않고 들어간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민족의 삶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였다는 것.

저자는 독재시절 국가정보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은 일화처럼 개인사도 전한다. 수 년이 흘러 비교적 친절했던 고문관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며 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길이라 단언하며 “길도 집이며, 집도 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때부터 순간순간이 마치 천금이나 된 듯이 소중해졌고, 불현듯 길로 나가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휴일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방에서 리모컨이나 이리저리 누르면서 보내기 보다 마음을 열고 길을 나서는 순간, 나를 반기는 놀랄 만한 것들이 이 세상에 많다”고 독자에게 당장 길로 나설 것을 권한다. 그 길 속에는 삶과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이세명 기자

△신정일 씨는 (사)우리땅걷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을 뒤흔든 최대의 역모 사건>, <신정일의 사찰 가는 길>, <새로 쓰는 택리지>(10권), <우리 역사 속의 천재들> 등 60여권의 저서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