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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가 잘 살아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풀벌레가 잘 살아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 기고
  • 승인 2015.08.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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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이라고 무시하면 생태계에 교란 일어나 / 작은것에 관심·사랑을
▲ 문 효치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현대인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바쁘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80이 넘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산업화와 기계문명의 발달로 어느 정도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자 늘 하는 직업이나 직장의 일 이외에도 교육, 운동, 여행, 취미활동, 그룹 활동 등 하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바쁘게 살고 있다. 나에게 맡겨진 일,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붙잡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바빠하는 나를 보고 마누라는 좋아한다. 활기가 있어 보이고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주위의 일에는 무관심 또는 무신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주위의 일이란 사실은 내 환경이다. 알다시피 환경이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늘 환경과 알게 모르게 관련을 맺으면서 살고 있기도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환경에 무관심한 것은 어쩌면 큰 과오이며 실책일 수 있다. 우리는 환경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경이라 하면 우리는 매연, 공장폐수, 녹지의 사막화,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 등 큰 이슈를 떠올리기 일쑤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전 지구인의 큰 과제로 등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큰 것 이외에 아주 작은 섬세한 것들에게도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天下大事必作於細(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노자)라 하지 않던가. 이왕 환경이란 말이 나왔으니 조금 더 말을 이어가자면 우리가 하찮다고 생각하기 쉬운 이름 모를 풀이나 작은 벌레에게 우리는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잘살아야 우리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시멘트 틈새에 피어난 풀 한 포기를 본다. 질경이다. 딱딱한 틈새에 겨우 뿌리를 내리고 영양실조의 작은 잎 몇 장을 허공에 피워 올리고 있다. 때로는 우악스러운 구둣발에 차이거나 밟히기도 했고 뜨거운 열기에 몸이 데쳐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그 풀은 신비롭게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생명의 힘은 이렇게 강인하다. 불만과 불평도 많을 테지만 아무 말 없이 우주로부터 건너온 생명의 한 토막을 감당하며 버티고 있다. 그 끈질긴 의지와 노력이 눈물겹다. 생명이란 이렇게 소중하고 감격스러운 것이다.

사마귀는 교미가 끝나면 수컷이 암컷의 먹이가 되어 몸을 바친다고 한다. 암컷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새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사마귀종의 생명성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수컷 사마귀도 더 살고 싶은 욕심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희생이 후손을 번식시키는데 필요함을 알기 때문이리라. 영원을 지향하는 사마귀의 생명의지가 또한 감동적이다.

나는 이것을 질경이와 사마귀의 ‘생명철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철학’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들은 제 나름의 철학이 있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무관심한 것, 무시하고 폄하하는 것들도 큰 틀에서 보면 생태계의 당당한 구성원이다. 그리고 이 구성원의 존재 의미는 우열의 구분이 없다. 생태계의 어느 한 부분이 파괴되면 모든 생태계에 교란이 일어나고 궁극에는 전체 구성원의 멸망이 초래될 수 있다. 풀과 벌레가 잘 살아야 우리도 잘살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작은 것, 미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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