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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깊은 밤에
나 홀로 깊은 밤에
  • 기고
  • 승인 2015.11.2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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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호 시인·석정문학관장

오스트리아 작가인 ‘카프카’의 소설에 〈변신〉이란 작품이 있다. 한 세일즈맨인 청년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한 마리의 커다란 독충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소시민적인 가정에서 벌레로 기피당하면서 불행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괴한 삶을 묘파한다. ‘카프카’의 초현실주의 수법 소설이라고 평가되는 이 작품은 철저히 자기 소외를 당한 인간 존재의 리얼리티 부각으로 공감된다.

정치 경제분야 편중 심화되고 있어

한편 ‘카프카’는 관료 기구의 기괴함과 냉엄성을 체험하며 반사회적 환상에 빠지는 심리 상태에 젖는다. 작품 〈성(城)〉에서도 주인공 ‘K’는 모든 제도와 사회로부터의 배반을 당하는데, 익명 ‘K’는 작가 자신이며 우리 소시민 중 하나인 셈이다. 소설 속에서는 특종의 성격, 아주 예외적 인격을 창조해 낸다.그러나 그 성격은 이 세상 어디엔가에 존재하며 나아가서 널리 고유되는 자아 개념으로 확산되는 캐릭터이다. ‘고독한 군중’이니 하며 다중 속에서 ‘오로지 홀로임’을 인식하는 현대인들 삶 속에서 우리가 이제는 기괴한 쉬르리얼리즘의 자아를 자꾸 체험하게 된다. 방대함 속에서 거듭 터득한 것은 ‘왜소한 나 하나’라는 인식이다. 방대하게 많은 수의 사람들, 방대하게 질양으로 확대된 지식들,방대하게 범람한 정보들, 방대하면서도 각인은 각인에게 대립하는 주장들, 마치 ‘만인은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라는 존 로크의 말이 상기되는 현상이다.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는 말이 있다. 넓고 넓은 바다에서 매우 작은 조 한 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광폭하고 강퍅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리고 패악한 범죄들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좁쌀 하나로 전락해 가는 자신임을 절감한다. 이미 느끼기 전에 그런 현실 속에 포위당한다. 모든 창문은 빗장을 걸어 잠그고, 다시 방범망을 외벽에 두르고 무슨 광학 센서를 설치하고, 결국 자신을 자기 안으로 결박해 간다. 안으로 갇혀서 자기 홀로의 통로만을 구축해 가는데, 이때 유일한 ‘누림’의 도구가 컴퓨터이고 컴퓨터의 게임프로그램이다. 홀로 전쟁하고 홀로 2개의 자아로 나누어 서로 치고 패는 자아끼리의 대립, 홀로 인식하고 단정하는, 편집증 같은 습속에 절어가는, 많은 현대 젊은이들을 본다.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스스로 사회에 벽을 두르고 환상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일반적 보편적 삶에 동떨어진 그런 행보의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카프카’의 환상이 스스로를 독충으로 만들듯이, 사람들도 자신을 독충으로 만들어 가는 부류의 상당수를 우리는 목격하기도 한다. 남들이 나를 소외시키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소외자로 단정하고 사회의 변경으로 벗어난다. 양지에서 음지로 다시 더 짙은 음지로 쾌속 전락하는 환상들이 무섭다.

'명상' 끝내고 우리 함께 광장으로

정치 경제 분야에서 가장 현저하게 이런 사회 심리의 조종이 자꾸 울린다. 정치 패거리들의 행패를 보라. 어디 조금이라도 상생을 도모하던가. 정부 예산 짜는 걸 보라. 어느 지역으로 편중해버린 횡포에 경악한다. 피해자가 아니면서 피해자로 둔갑해 버린 소외지역 주민들의 자기 비하 심리도 이런 사회 현상에 부가한다. 소통의 기운은 아예 분쇄되고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 버리는 완승 쾌자들의 깃발들만 무성하다. 높은 관직은 한 곳에서 독식하고 누리는 자는 더 누리고자 하니, 우리 소시민은 자꾸 서럽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창창하다. 나 홀로 깊은 밤 ‘명상’(?)은 이제끝내자. 우리 함께 광장에 나가자.같이 놀러 가거나 함께 일하러 가자. 우리는 우리의 노래를 만들어 씩씩하게 부르면서, 소외자가 아니라 시대의 한복판에 군림하는 자로서 당당하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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