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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과 비움 쓰임새'의 극치, 죽염
'없음과 비움 쓰임새'의 극치, 죽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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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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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세 인산가 대표·광주대 생명건강과학과 교수

우리는 일생을 통해 다양한 배움의 과정에서 많은 지식들을 습득하고 두뇌의 기억장치에 저장해필요할 때마다 기억을 되살려 폭넓게 활용한다. 그러나 모든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는데 치중하다보면 정작 그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때 많은 지식이 잘못된 선입견으로 작용하는가 하면 그릇된 지식에 집착해 도리어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장애로 나타나기도 한다.

■ 대나무·소금 합해진 필수 미네랄

사람의 두뇌와 여러 가지 면에서 흡사한 컴퓨터도 많은 정보를 검색하고 저장하며 메일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삭제해야 할 ‘자료’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휴지통이 비치돼 있다. 정보의 분량이 너무 많아지면 필요한 정보와 자료들을 그때그때 찾아서 활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과부하가 걸려 제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사람의 두뇌이든, 컴퓨터이든 ‘비움’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되리라 여겨진다. 우리 머릿속의 지식이나 정보를 위시해 다른 모든 쓰임새의 근원 역시 없음과 비움에서 시작된다는 불변의 진리(眞理)를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모든 풀과 나무를 통틀어 속을 비운 나무는 대나무뿐이다. 그래서 대나무는 예로부터 동양의 현자(賢者)들이 매우 존중해 세상에서 가장 오랜 수명을 유지하는 열 가지 대표적 존재, 즉 산수지일록운학죽구송(山水芝日鹿雲鶴竹龜松)의 십장생(十長生) 중 하나로 포함시켰고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의 시 소재와 사군자(四君子) 등 그림 소재로도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각광을 받은 존재이다.

마음을 비우고 무심(無心)으로 도(道)를 추구함으로써 대나무는 대금, 퉁소, 피리로 거듭나 묘음(妙音)을 빚어내는 악기(樂器)로 새로운 생명력을 이어가기도 하고 한 마디 한 마디 절도 있게 성장해 역사상 오랜 세월에 걸쳐 절개의 상징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대나무의 효용성이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영원한 진리를 상징하는 소금을 만나 서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불살라 인체의 잃어버린 조화와 균형을 회복시켜줄 필수 원소들을 골고루 함유한, 인체 필수 미네랄의 보고(寶庫), 즉 죽염(竹鹽)으로 거듭나는 일이라 하겠다.

대나무는 인류에게 크나큰 생기(生氣)를 불어넣을 놀라운 생명력을 지니고도 ‘무심(無心)한 도인(道人)의 마음’을 체득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발휘하고, 또 다른 생명력의 근원 물질인 소금을 몸 안으로 받아들여 마지막 구도(求道)의 열정(熱情)을 불살라 스스로 재가 되어 사라지면서 마침내 시공(時空)을 초월해 수많은 이들을 각종 암, 난치병, 괴질의 위험으로부터 구제할, 생명력의 원천인 죽염을 완성해낸다. 이것이 바로 노자께서 도덕경 제 11장을 통해 누누이 강조한 ‘없음과 비움의 쓰임새’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 질병으로부터 구제할 생명력 원천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살통으로 연결되어 수레를 이룬다.

비었음으로 말미암아 수레로서의 쓰임새가 나온다.

찰흙을 잘 이겨 그릇을 빚는다.

비었음으로 인해 그릇으로서의 쓰임새가 나온다.…중략…

그러므로 있음(지님)에서 이로움이 나오는 것이고(故 有之以爲利)

없음(비움)에서 쓰임새가 나오는 것이다(無之以爲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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