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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와 금전두엽
금수저와 금전두엽
  • 기고
  • 승인 2016.01.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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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 경희대 객원교수·전북생활체육회 부회장

세계 3대 판타지소설 중 하나인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에게 영화제작자가 찾아 왔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구현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리 판단한 톨킨은 밀린 세금을 내기 위하여 2000만 원이 못되는 헐값에 판권을 팔았다. 그 이후 수차례 헐값에 넘겨지던 반지의 제왕은 2001년부터 영화로 만들어졌고, 세편의 시리즈는 3조 원 이상의 흥행을 거두었다. 결국 1976년에 판권을 사두었던 ‘자엔츠’라는 사람은 2000억 원에 가까운 엄청난 돈을 벌었다. 누구도 내다볼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1931년 미국의 출판사들은 중국 냄새 가득한 소설에 대해 출판을 외면했다. 허나 7년 후, 이 책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바로 펄벅의 ‘대지’다.

아직 보지 못한 세상의 변화

이처럼 세상의 일들은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는 일이 많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보이지만, 살아가는 순간에는 변화의 속도나 폭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눈앞에 놓인 현실에 절망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한데 지난달 중순에 서울대생이 자신의 옥탑방에서 투신해 숨진 사건이 있었다. 그는 유서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합리’와 너무나 다른 ‘세상의 합리’에 대해 비관했다. 결과적으로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버틸 이유를 찾을 수 없기에 떠난다는 것이다. 또 요즘 회자되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에 대한 얘기도 했다. 우리사회에서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색깔이 아닌 수저색깔이라는 것이다. 채 스물도 되지 않은 어린 학생이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안고 세상을 등진 것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지만,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서는 동의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설사 지금의 세상이 그 학생의 시각과 너무 많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세상은 계속해서 변해왔고, 또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고 했다. 그 학생은 세상이 인정하는 합리가 자신의 생각과 너무도 달랐기에 절망하여, 그런 극단적인 판단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세상은 변하고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지만 달라진 미래가 오고 있는 것이다. 또 자신이 서울대에 다니는 재원이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며 희망을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희망이란 단어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실례로 영국의 선박박물관에는 특별한 배가 한 척 전시되어 있다. 로이드보험회사가 거액을 들여 구매하여 기증한 것이다. 이 배는 1894년에 항해를 시작한 이후 대서양에서 116개 암초와 충돌했고, 138개의 빙산에 부딪혔으며 13차례의 화제를 겪었다. 또 폭풍을 만나 돛대가 207번이나 부러졌다. 그럼에도 한 번도 침몰하지 않았다. 상상조차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이지만, 그 배의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희망을 품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열어보지 않은 선물이 된다. 새해가 시작되고 있다. 세상은 또 다른 새로움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 새로운 세상은 오늘보다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자. 모두의 그런 믿음이 꼭 이루어지는 희망찬 2016년이 되길 소망해본다.

△김진 교수는 경희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사)국가비전연구소 상임이사를 역임했고, 저서로는 〈책이 아닌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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