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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홀로서기
전북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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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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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점동 변호사
1894년 1월 전북 정읍 고부에서 전봉준, 김개남 등 하층 농민이 주동이 되어 동학 조직을 매개로 일어난 동학 농민 혁명운동이 호남지역을 석권하고 충청도까지 진출하다가 관군 및 청·일의 세력에 막혀 혁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중도에 좌절되었다. 그 혁명이 성공하였다면 우리나라도 중국의 한나라, 명나라 등과 같이 하층민이 주동이 되어 찬란한 새문화 국가를 탄생시켰을지 모른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정치·경제·군사 호령하던 전라북도

하지만 그 혁명의 정신만은 몇 년 후의 항일투쟁운동, 이어진 반민주 독재투쟁으로 면면히 이어져 지배층의 수탈에 저항하고 평등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정신세계의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김제·나주를 중심으로 하는 드넓은 호남평야는 우리나라의 최대의 곡물 생산지로서 과거 우리나라 경제력의 바탕이 되었다. 호남이 없으면 조선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곡물생산량이 풍부한 우리 전라도는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 이었다. 그 중 특히 김제지역 일원의 광활한 평야지대는 일본 왜구와 일제 강점기의 제1수탈대상이 되었다.

조선시대까지는 전주시가 전라·제주를 관할하는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다. 전라관찰사는 제주 포함 전라도의 모든 공무원에 대한 감찰권한을 행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일 병마절도사, 제일 수군절제사의 직위까지 겸직하여 가히 전라도의 입법· 사법·행정뿐만 아니라 군사까지도 독점하여 전라도를 호령하였다.

이처럼 우리 전북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정치적·군사적으로 전라도를 호령하는 중심으로서 항상 기능하였고, 그만큼 우리 전라북도의 향배가 전국의 풍향을 좌우하였다. 이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 전북의 현실은 그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가난과 배고픔에 굶주리던 경상도가 박정희 대통령을 내세워 그 지역을 공장지대로 변신시켰다. 울산, 포항, 창원 등을 비롯하여 경상도 거의 전역이 현대 산업화 도시로 발전하여 호남과의 전세가 역전되어 경상도가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할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광주·전남은 김대중 전 대통령 중심으로 똘똘 뭉쳐 경상도에 대한 전라도의 차별논란을 부각시키며 투쟁한 결과 그 과실을 하나하나 챙겨가며 지역을 발전시켜 이제 전국을 좌우할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이번에 안철수 신당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영광스럽고 풍요로운 과거에 안주하며 지역발전의 계기가 주어져도 이를 거부한 결과 인구는 매년 유출되고 지역경제는 전국 꼴찌로서 이제 존재감마저도 희미한 느낌이다. 힘이 없다보니 충성편지로 대변되는 읍소주의·온정주의가 이제 우리지역의 보편적인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지역의 모든 현안문제를 읍소주의와 온정주의에 기대어 해결하려드니 동학농민혁명의 주역들이나 우리 전북 선조의 영령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읍소·온정주의로는 얻을 것 없어

우리가 읍소주의와 온정주의로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같은 전라도 안에서도 광주 전남 사람들에게 ‘B백’이라 무시당하고 도민들은 패배의식에 길들여지고 지역현안 사업은 표류하여 되는 게 거의 없다. 이런데도 우리 지도자들은 자신만의 영달을 위하여 줏대 없이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민심이나 권력자에 기대어 자기자리나 유지하려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착취를 뿌리 뽑고 평등사회를 건설하려는 동학농민혁명의 정신, 전주 전라 감영에서 전라도를 호령하던 전라관찰사의 기개가 바로 우리 전북의 홀로서기가 본 받아야 할 정신자세 아닐까?

△김점동 변호사는 검사 출신으로 법무법인 백제의 대표 변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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