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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거시기 사전
전라북도 거시기 사전
  • 기고
  • 승인 2016.02.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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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천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선생님, 쇳대 주세요. 중학교 시절, 서울에서 부임해 오신 물리 선생님은 젊은데다가 미인이어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오죽하면 물리실 청소 당번으로 뽑히는 게 영광이고 자랑이었다. 소년 몇이 그날 그 영광을 안았다. 쇠, 때라니?…. 선생님은 당연히 그렇게 반문했다.

아, 물리실 끌르는 거요. 소년 하나가 설명했지만 선생님에게는 더욱 요령부득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끌르는 거?…아, 키 말이니? 소년 하나가 손가락을 모아 비트는 수화를 곁들인 다음에야 선생님은 쇳대에 대해 이해했다. 소년들이 그때 일제히 외쳤다. 기요!….

표준어 정책으로 사라지는 우리말

키(key)를 두고 처음에는 쇠때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왜 기라고 말하는 것인지, 선생님은 여전히 오리무중의 고운 눈길을 보냈지만 소년들은 그저 신을 내고들 있었다.

소년들이 자라서 군대에 갔더란다. 하루는 쇠고깃국이 나왔는데, 고기는 선임병들이 사전에 다들 나눠 먹은 터라 기름이 둥둥 뜬 국물이 전부였다. 그걸 본 호남 병사가 순전하게, 정말 알 수 없어서 혼잣말을 해버렸다. 이게 무슨 말국이야?…. 그러자 타 시도 출신의 선임병이 귀싸대기를 냅다 갈기더란다. 그도 살코기를 먹었던 선임 가운데 하나였던 터라 비밀이 탄로날까봐 쉬쉬하던 참이었으리라. 야, 쇠고깃국을 두고 뭐, 말(馬) 국이라고?

전라도 사투리를 두고 잠시라도 웃는다면 다행이다. 웃을 일 하나 없는 판국에 전라도 사투리라도 있어서 함께 박장대소할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기특한가 말이다. 헌데 때로는 억울한 심사가 들 때도 아주 없지는 않다. 쇳대는 그렇다 쳐도 표준어로 등록해야 할 말들을 배척하는 대신 용납하지 말아야 할 단어들을 마치 선심이나 쓰듯 표준어로 인정할 때가 그렇다.

이를테면 사과가 ‘너무’ 익었다고 한다면 그 사과는 상품가치도 떨어질뿐더러 먹기에도 좀 그렇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 ‘너무’는 작년에 표준어로 채택이 됐다. 아, 그 물리 선생님은 너무 이쁘셨지, 하고 동창회에서 누군가가 말한다면 이제 우리는 그 뜻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 걸까?

‘손주’라는 말도 표준어가 된지 오래다. 명백한 한자어 손자(孫子)를 일러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은 손주라고들 불렀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니면 아니고, 기면 죽어도 긴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인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표준어로 채택해야 할 말의 수효가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겠지만 손주라는 말이 표준어로 자리 잡는 바람에 한 자리를 꿰차지 못한 아름다운 전라도 말도 있다.

이를테면 ‘열쪼시’라는 말이 그렇다. 교양 있는 서울시민들은 닭을 보면 그게 암탉인지 수탉인지, 아니면 병아리인지만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씨암탉’이란 표현까지는 용케 살아남았지만 그건 속담에 인용된 탓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삼계탕 재료로 딱 좋은, 대닭이나 소닭이 아닌, 중닭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게 바로 ‘열쪼시’다. 헌데 이 멋진 표현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그걸 일러 ‘영계’라고 해버리는 것이다. 표준어 정책이 우리 국민들을 조금은 우습게 만들어버린 예다. 깜밥과 눌은밥은 없고 누룽지만 있다고?

이제 전북 사투리 지키기 나선다

할 수 없다. 우리말이니까 우리가 지킬 수밖에…. 그래서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은 우리 사투리사전을 편찬할 계획을 이미 세워두었다. 사투리사전이라는 말도 싫다. 아구똥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전라북도 거시기사전〉이라고 명명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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