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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의 복권을 위하여
리얼리즘의 복권을 위하여
  • 기고
  • 승인 2016.03.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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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상 소설가
2월 어느 날, 몹시 바람이 불고 추운 날, 서울의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유홍준이 기획한 〈리얼리즘의 복권〉 전시회에 갔었다. 이종구, 신학철, 황재형, 임옥상, 고영훈, 오치균, 권순철, 민정기의 그림이 층마다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을 찬찬히 보다가 문득 “복권”이라는 말에 어떤 의문이 들었다. 복귀도 아니고 복권이라니……. 한국의 문학예술에서 리얼리즘은 ‘파문’ 당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파문' 당한 한국 문학예술 리얼리즘

민중미술, 민족미술, 리얼리즘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풍미할 때에도 당대의 미술시장에서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오윤을 필두로 한 현실주의자들은 ‘미술시장, 당대의 화풍, 아뜨리에’라는 제도의 바깥에 존재하며 현장에서 시대와 격투하며 화폭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온몸으로 참여했었다. 당대 주류비평과 시장은 그들을 그림자처럼 취급했고 무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의 탄압과 투옥, 시장의 외면에 굴하지 않고 시대정신을 이끌어가는 강렬한 전위적 존재로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서서히 잊혀졌다.

유홍준의 이번 기획전은 한 시대의 추억과 회고를 통해 ‘이 땅의 오늘’을 살피자는 의도로 기획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홍준의 이름을 걸고 리얼리즘을 복권시키겠다는 의도는 약간 위험하긴 했지만 성공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추억과 회고에 집중했기 때문에 리얼리즘이란 여전히 ‘과거에 갇힌 시선’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신학철의 〈한국현대사〉는 예나 지금이나 오늘의 역사를 준엄하게 담고 있었으며, 이종구는 농민들의 굽은 등과 서슬 퍼런 낫의 ‘투쟁’에서 깊고 푸른 밤의 산 속에 등불 하나로 빛을 내보이고 있는 미황사의 ‘영성’으로 존재를 이동시키고 있었다. 황재형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눈 가득 흘러넘칠 듯 눈물을 담고 이 세계의 남루와 가혹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오치균과 권순철 민정기 고영훈의 작품 앞에서도 오래 머물렀다. 세계를 채운 어두운 색채와 거친 질감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얼마 전, 옛 보안사령부 건물에 다시 들어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거부당한 문익환 목사가 철조망을 넘어오는 그림을 다시 출품한 임옥상은 당대성이 펄펄 살아 있는 작품으로 유홍준의 기획전에 응답했다. 서른여섯 장의 목탄화로 구성된 ‘상선약수(上善若水)’는 결코 팔리지 않을 그림이었다. 시대의 가장 아픈 곳에 응답해온 임옥상의 이 그림은 경찰청 종합상황실의 모니터와 완벽하게 닮아 있다. CCTV가 실시간으로 전송해오는 서른여섯 개의 상황을 경찰청 종합상황실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그 한 복판에 물대포와 맞서고 있는 농민이 서 있다. 임옥상은 노자의 가장 아름다운 이상인 상선약수를 그림의 제목으로 삼아 2015년의 대한민국을 야유하고 있었다.

임옥상은 물을 그렸으니 이제는 불을 그리겠다고, 적당한 제목이 없다고 고민했다. 그 자리에서 삼계화택(三戒火宅)이라는 제목이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좋다고 했다. 불의 그림 삼계화택은 오직 붉은 색의 단색화로 이미 완성되어 있다.

즉물적인 것에만 현혹된 건 아닌지

이번 〈리얼리즘의 복권〉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작품은 황재형의 ‘폭설주의보’였다. 이재규는 이 그림을 “곧바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듯 겨우 버티고 서있는 산속 집에 내린 ‘폭설주의보’는 우리 모두에게 닥쳐온 위기의 깊이를 짙게 보여준다. 보는 내내 아팠다.”고 평했다. 나도 더 이상의 말을 찾지 못했다. 우리 모두에게 닥쳐온 위기의 깊이를 우리는 애써 외면하며 겨우 살고 있다. 즉자적이고 즉물적인 그 무엇에만 현혹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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