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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도 능력이다
아부도 능력이다
  • 기고
  • 승인 2016.03.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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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중 전북인재육성재단 사무국장

달콤한 미소를 담은 칭찬을 싫다고 할 사람이 그 누구일까? 분명히 ‘아부’인 줄 알면서도 싫지 않게 받아들이는 게 동서고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본성이다. ‘아부’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의미를 파악하기 이전에 순수한 칭찬으로 착각하게 만들면서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최면과도 같은 ‘전략적인 칭찬’이다. ‘아부’는 이기적이지만 ‘칭찬’은 이타적이라 할 수 있으며, 칭찬은 진솔한 마음의 표현이지만 아부는 립 서비스일 뿐이다.

상대 기분 좋게 하는 전략적 칭찬

아부는 상대에게 충족을 주려는 멘트성향의 아부, 상대에게 더 잘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는 칭찬성향의 아부,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의욕을 일으켜주는 격려성 아부, 난처한 분위기에 둘러싸인 사람에게 모면을 시켜주는 기분 전환성 아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환심성 아부 등 그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아부가 그럴 듯하게 자신을 속게 해주는 입에 바른 말일지라도 미소를 짓게 하는 칭찬이었기에 듣는 이의 기분은 흐뭇할 것이다.

아부가 비록 바람직하지 않은 대화법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말을 던진 이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지성을 갖춘 교양 있는 사람이라도 계획적으로 포장해서 다가오는 세 치의 현란한 덫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곧잘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온몸을 던져 마지막으로 봉사하고자 이 자리에 선 000입니다.”라고 외친다. 이렇듯 달콤한 정치인들의 상투적인 아부에 우리는 무던히도 속아왔지 않았던가?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이자 정치가인 데모스테네스(BC 4세기)는 “나는 대중들을 내 가족만큼이나 사랑한다.”라고 떠벌리는 아부꾼들은 대개 부패한 정치인들이라고 비난했다.

필자는 아부와 면전(面前)의 칭찬은 아이스크림 같이 시원하고 달콤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속에 독이 묻어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천부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1725~1798,이탈리아)는 ‘미인을 보거든 지성미를 칭찬해주고, 지성을 갖춘 여인에게는 미모를 칭찬해 주어라.’라는 그 다운 철학(?)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상대와 시공(時空)을 불문하고 아부만큼 사람을 유혹하는 소리 없는 무기도 세상에 드물 것이다. 세상에 검은 색이 없었다면 순백의 순수하고 깨끗함을 모르고 살아가듯, 아부도 칭찬이라는 미명아래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평생 동안 진실만을 말하며 살기는 힘들 것이다. 거짓과 진실이 뒤범벅 되고, 선악이 섞여서 손잡고 다정한 체하며 얽혀가는 삶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세속의 그림이리라.

‘네 탓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때, 나머지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듯 달콤한 맛을 지닌 ‘아부’는 상대의 이성을 마비시켜가면서 칭찬으로 가장한다. 목적을 지닌 가면만 쓰지 않는다면 늘 부족을 느끼며 아쉽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행복한 미소를 가져다주는 필요악(必要惡)이 되어 세상을 밝게 해줄 것이다.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능력과 별난 재주로 삶을 풍요롭게 끌어가는 것도 능력이고, 행복이다.

자신 신뢰 잃는 아첨꾼은 안 돼야

귀에 달콤한 색깔 있는 말보다는 가슴을 적셔주는 따뜻한 사람을 좋아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그리 못하는 게 인지상정인 것 같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이 담긴 ‘아부’는 순간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하는 무기로 쓰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부’를 잘하는 것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능력이고 기술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의 바른 행동이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보다도 훨씬 낫다고 했듯, 지나친 기교를 부려 자신의 인격에 신뢰를 잃어가는 ‘아첨꾼’만 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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