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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파르티잔' 개봉에 맞춰
'소년 파르티잔' 개봉에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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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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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용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수입한 〈소년 파르티잔〉을 개봉했다. 이에 맞춰 서효인 시인과 함께 명동의 씨네라이브러리 극장에서 대담을 나누는 행사를 가졌다. 이 작품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다. 처음부터 〈소년 파르티잔〉을 개막작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고민했던 작품들의 경우 게스트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부랴부랴 〈소년 파르티잔〉을 개막작으로 선정하게 됐다. 전주로 옮겨온 후 이전의 개막작 분위기와는 달리 최소한 개막작 감독의 참석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전에는 개막작 게스트가 없이 전주에서는 개막식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개막식의 느낌이나 개막작 위상으로 적절치는 않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세상에 대한 의심·회의 던지는 일 필요

아무려나 오랜만에 〈소년 파르티잔〉을 관람해야 했다. 사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파르티잔’이다. 한국에서는 ‘빨치산’으로 옮겨진 파르티잔의 원래 뜻은 유격전을 펼치는 비정규군을 이르는 말이다.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은 아니지만 레드 콤플렉스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파르티잔’이라는 말은 종종 오해를 사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작년 이 무렵에 적당한 개막작의 제목을 고민하던 ‘소년 파르티잔 행동지침’이라는 서효인 시인의 시집을 알게 되었다. 당장에 서점에 달려가 시집을 들춰봤다.

“항문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옵니다. 당신의 등을 밀어냅니다. 그럼 이제 당신 차례, 꽃의 슬픈 유래나 강물의 은결 무늬에 대한 노래에 항문이 간질간질하던 당신, 구타의 음악 소리에 볼기짝이 꽃처럼 붉어져 혼자 타오르고 있던 당신, 무거운 가방에 매달려 참고서를 완주하던 당신, 바로 당신. 붉은 엉덩이를 치켜들고 만국의 소년이여, 분열하세요. 배운 대로, 그렇게.”( ‘소년 파르티잔 행동지침’ 부분)

나는 시집의 제목과 동일한 시의 내용이 고스란히 영화 속 주인공 알렉산더의 분열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원제인 파르티잔을 대신하여 ‘소년 파르티잔’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몇 주 혹은 몇 달의 시간이 흘러 출판사 ‘민음사’에 방문할 일이 있었을 때 ‘서효인’ 시인의 이야기를 꺼냈고, 편집부 직원들은 내 앞에 서효인 시인을 데려다 주었다. 그는 민음사 한국문학팀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지난 주에 서효인 시인을 만났을 때 그는 팀장이 되어있었다. 물론, 팀원은 한 명 밖에 없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벌어진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나는 앞서 소개한 이 영화의 제목을 짓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시인에게 영화를 보고 난 후 정말 당신의 시집과 비교하는 것이 어떤지 질문을 던졌다. 서효인 시인은 “감각적 의심”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은 조금은 달라지긴 했지만 첫 시집인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을 내놓았을 때 세상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던지는 것에 열중했다는 표현을 했다.

순종만으로는 자아를 성장할 수 없어

영화 속 주인공인 알렉산더가 성장과 함께 고민하는 것 역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의심이다. 이 감각적 의심은 한 자아를 성장시킨다. 학교나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질서와 함께 강조하는 것은 ‘순종’이지만 순종만으로는 성장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 질서가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공동체의 규칙이 유지가 되는지를 의심하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되고, 소년은 청년이 된다. 의심을 위한 의심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의심,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부정의 정신은 새로운 세대의 도래를 기다린다. 〈소년 파르티잔〉의 동화적인 상상력은 동생을 안고 도망친 알렉산더를 통해 미래의 시간을 품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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