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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았던 바둑의 신, 다음은?
우리가 보았던 바둑의 신,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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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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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천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전주 출신 이창호 기사가 열여덟 나이에 바둑으로 세계를 제패했을 때, 이전까지 천하를 호령하던 기사들은 적지 않게 당황하고 또 몹시도 허탈해마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둑은 오랜 세월 우리가 믿어왔던 대로 그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라서 지천명의 나이 오십은 돼야 비로소 바둑판을 제대로 읽을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니 그 충격과 황망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과학 발전의 정점에서 신을 대하다니

누군가가 기사 이세돌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만약 바둑의 신이 있다면 몇 점이면 되겠습니까? 이세돌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두 점 깔면 충분합니다. 그런 뒤 덧붙였다. 만약 목숨을 걸라고 한다면 석 점은 깔아야겠죠. 이 얘기는 원래 일본의 기성 후지사와에게 기자들이 물었던 내용이다. 당시 후지사와는 석 점이라고 대답했고,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게 만약 목숨 대국이라면 넉 점을 깔고 두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세돌은 후지사와보다 한 점씩을 더 줄여 대답한 것이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발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바둑을 아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세계 정상급 기사들의 바둑 내용을 평하기를 궁극에 이르렀다고도 하고, 바둑 9단을 따로 일러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입신(入神)이라고까지 하지 않던가?

인간 두뇌의 대표인 이세돌과 인공지능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지난주 끝이 났다. 필자 역시 아마 몇 급에 지나지 않는 실력이지만 관전 분야에서만큼은 8단이라고 평소에 자랑하고 다녔던 터라 기대 속에서 대국을 지켜봤고, 이세돌의 연패를 지켜보면서 엄청난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아니, 두려웠다. 이창호가 바둑계를 평정하던 시대의 당혹감은 오히려 낭만적이었던 셈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4:1이라는 전적만으로 본다면 이세돌은 알파고에게 두 점 접바둑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알파고가 바로 바둑의 신일 터였다. 신이라니? 우리가 이 대명천지 과학 발전의 정점에서 막상 신을 대해야 하다니?

바둑 대결이 한창일 당시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 최대 국립은행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로보 어드바이저 도입을 확대하면서 550여명의 인력을 해고할 방침이라는 사실을 전한 바 있다. 그 족집게 도사 로봇이 알려주는 대로 투자하면 과연 수익률이 어떻게 될는지 현재로서는 헤아릴 길이 없지만 아직 초보 수준이라고는 할망정 우리 곁에 투자의 신까지 이미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언론재단에서는 한 의미 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로봇이 자동 작성한 신문기사를 일반인들에게 보여주고 작성 주체가 사람인지 로봇인지를 묻는 실험이었는데 불과 46%만 정답을 맞혔다고 한다. 머지않아 기사 작성의 신까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예술분야도 로봇이 대체할까

문화예술 분야는 어떨 것인가? 로봇이 시를 쓰고 소설을 창작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 거라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게임과 달리 예술은 인간 정신의 영역이라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까? 이번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는 단순한 알고리즘을 넘어서서 무엇인가 사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국이 끝난 뒤 이세돌은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지만 필자는 그날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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