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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의 당당함
역주행의 당당함
  • 기고
  • 승인 2016.03.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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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상 소설가

익산 역 앞에는 시에서 조성한 ‘문화예술의 거리’가 있다. ‘문화예술의 거리’라는 명칭에 걸맞게 문화와 예술이 넘치는 거리는 아니다. 한국의 어느 중소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낡고 늙은 원도심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 거리다. 나는 그 거리에 있는 E127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이 거리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기만 해야 하는 일방통행 길이다.

익산역 문화예술거리 일방통행길

한 달 전쯤의 일이다. 승용차를 몰고 문화예술의 거리로 들어와 카인드마트 앞에 왔는데 역주행 하는 승용차와 마주치게 되었다. 일방통행의 길에서 역주행하고 있는 자동차가 비켜 주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역주행하는 승용차가 비켜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 역주행 승용차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적을 빵빵 울리며 나더러 비켜 달라고 성화였다. 어이가 없어 그대로 서 있었더니 양장점 옆으로 방향을 움직여 겨우 교차할 수 있게 되었다. 교차하면서 “여기는 일방통행 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X새끼야, 뭘 어쩌라고? 니가 비키면 되지!” 라는 욕을 퍼붓고는 가버렸다.

112에 전화를 걸어 일방통행로의 역주행에 관련해 민원을 넣었더니,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러더니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으라는 친절한(?) 해법도 제시해주었다. 그 후로도 이 거리의 역주행 문제는 어떤 해결의 기미도 없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문화예술의 거리는 사실상 일방통행로가 아닌 쌍방통행로가 되어 버렸다. 역주행을 하는 승용차들이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승용차를 몰고 문화예술의 거리로 막 들어오는데 역주행하는 차와 맞닥뜨렸다. 역주행하는 차니까 먼저 양보를 할 줄 알고 잠시 기다렸다. 그런데 상대방 운전자가 창문을 열더니 손짓으로 옆으로 양보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처구니가 없어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경적을 울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어이 비켜주질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내려서 “이 길은 일방통행로인데 역주행하는 차가 비켜주셔야죠.” 라고 말했다. “아, 그 X발 너무하네. 좀 비켜달라니까!” 라는 말이 돌아왔다. 이쯤 되면 나도 물러설 수는 없다. “일방통행을 위반한 역주행 차가 비켜야 하는 거지. 내가 왜 비킵니까?”라고 응수했다.

그 때, 허름한 양복점에서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나오더니 “거 좀 비켜주지 빡빡하게 나오네.” 라고 말했다. 화를 꾹 참고 “아니 역주행하는 차가 비켜야 되는 거 아닙니까?” 라고 되물었다. “아 거참, 깐깐하시네. 그냥 좀 비켜주시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나는 버티기에 들어갔다. 양복점에서 나온 그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비난했다. 그들의 비아냥에도 꾹 참고 버티니까 그들은 역주행하는 차로 가서 양보하라고 말했고, 그 차가 양보(?)했다. 양보라니…. 저들은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역주행을 하던 그 운전자는 무슨 승리라도 한 듯이 욕설을 퍼부으며 소위 양보(?)를 했다. 몰염치와 몰상식이 거꾸로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몰염치 몰상식이 오히려 큰소리 쳐

문화는 시민적 교양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그 오래된 빛을 발휘한다.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하는 자동차가 더 당당한, 몰염치와 몰상식이 늘 염치와 상식을 억압하고 있는 상태가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생활문화는 물론이고 정치문화까지 천민성의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형편이 이러하니, 시민적 교양은 아예 발붙일 데가 없는 것이다. 아니 교양이랄 것도 없다. 그저 상식만 지켜도 되는 일이 아닌가. ‘일방통행로에서의 역주행은 불법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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