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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코드
셰익스피어 코드
  • 기고
  • 승인 2016.04.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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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용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준비한 프로그램 중 하나는 셰익스피어 특별전이다. 서거 40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이 명목이기는 하지만 단일 작가로서 가장 많이 영화화 된 사례를 꼽으라고 한다면 분명 셰익스피어는 첫 번째, 두 번째 손가락 사이에 꼽힐 것이다. 여기에 영감을 주거나 원작을 변형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분명 첫 번째로 꼽힐 수밖에 없다. 작품수도 많은 데다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쓴 탓에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준비

전주의 상영작 8편은 BFI(브리티쉬 필름 인스티튜트)에서 디지털로 모두 리마스터링한 작품이다. 리마스터링한 작품이 많지는 않았지만 상당수 제외된 작품들을 고려해 보면 영화사에서 남을 법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1910년대 만들어진 다양한 원작 영화들이었다. 영국은 물론이고, 이탈리아와 주변국가에서도 셰익스피어 원작을 빌려왔다는 것은 20세기 초반에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은 이미 보편성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셰익스피어가 영화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보편성을 지닌 이름’이었다는 것은 다른 문화 장르로의 전이를 손쉽게 하여준다. 셰익스피어는 문학, 연극, 영화, 음악을 오가며 하나의 보편적 코드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부터 기인했다. 〈베니스의 상인〉, 〈오델로〉의 무대가 되는 곳은 ‘베니스’다. 심지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는 이탈리아의 베로나로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낯선 도시를 무대로 삼았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과정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충실하게 대변하였다. 사랑은 물론이고, 질투, 과욕, 파멸과 죽음 그리고 후회의 감정들이 희극과 비극을 막론하고 감정의 결을 따라 뚝뚝 묻어난다. 무성영화 시대의 감독들은 색깔도, 소리도 입힐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원한 것은 인간의 행동과 얼굴 속에서 묻어있는 감정이다. 이들은 셰익스피어를 소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극적인 감정들을 연출해 볼 수가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 기대어 스크린 위에 인간의 감정을 묘사해 볼 수가 있었다. 100년 이상 보관된 필름들의 모음집인 〈무성시대의 세익스피어〉는 움직이는 화면과 인간의 극적 감정이 조우하는 다양한 순간들을 집성해 놓는다. 셰익스피어 코드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꽃을 피웠다.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영국드라마 중에 국내에서도 공중파로 방영된 〈닥터 후〉 시리즈 중에는 ‘셰익스피어 코드’라는 제목을 단 내용도 있었다. 셰익스피어 시대로 간 닥터와 여주인공이 셰익스피어를 도와주고, 그 시대에 존재했던 마녀(알고 보면 외계인)를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황당한 내용이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을 느꼈다면 공감할 법한 내용이다. 마녀들의 계획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종의 ‘주문’을 거는 것이었다. 이 주문의 실체가 바로 ‘셰익스피어 코드’다.

친숙하기에 더 끌리는 세계로

이 강력한 코드는 시간을 초월하여 “로미오! 왜 당신은 로미오인가요. 당신의 아버지를 부인하고 이름을 버리세요. 그러면 나도 캐퓰릿의 이름을 버릴게요.”라는 줄리엣의 황당한 주문에 “물론 그러겠소. 난 이제 로미오가 아니오.”라는 넋이 나간 로미오의 답변으로 이어진다. 감정은 일순간 이성을 마비시키고, 당신에게 주문을 걸고, 사람들을 인생극장으로 끌어들인다. 아마 8편의 작품이 신경마비의 순간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것은 친숙하기에 더 끌리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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