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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체르노빌의 목소리
  • 기고
  • 승인 2016.04.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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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상 소설가
지난 2월 23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2015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합독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의 초록시민들과 함께 하는 자리였다. 합독회는 내가 먼저 제안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의 이정현 사무처장이 좋다고 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 매주 화요일마다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어느덧 4월 19일 저녁에 읽기가 끝났다. 그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묘사도 서술도 없는 언어의 뼈들이 가시처럼 내 눈을 찔렀다.

30년 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엄마, 나 못 참겠어요. 그냥 죽여주세요!”

“숲은 아무도 안 씻겨줘요. 숲도 죽을 거예요. 선생님이 말했어요. 방사선을 그려보세요. 나는 노란 비가 내리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빨간 강도 그렸어요.”

1986년 4월 26일 발전소의 제4원자로가 폭발하자 체르노빌 주변에는 사신(死神)이 덮쳤다. 방사선이란 사신은 냄새도 색깔도 없이 공기에 섞여 미세먼지보다 더 작은 빛으로 날아다녔다. 사고가 나자마자 소방대원, 군인, 해체작업자, 엔지니어 들은 심지어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소비에트의 영웅이 되었지만 핵에 오염되어 빠르게 병들었고 상상도 못할 지경으로 망가진 채 죽어야 했다. 뒤이어 사고현장에 도착한 공산당원, 마을주민들, 교사, 기자, 과학자, 작가, 사진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체르노빌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그들은 사신의 검은 손에 몸과 영혼을 저당 잡혀야 했다. 그들은 누군가의 남편이며 아내며 자식이었고 부모였다.

그들은 정치와 관료주의 그리고 서방에 대한 정치공세라는 시스템에 가로막혔고, 집단적인 무지와 방심 그리고 국가와 언론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핵발전소의 사고가 내린 이 재앙의 깊이와 예리한 칼질이 어떻게 삶을 완벽하게 무너트리는지 알지 못했다. 뒤늦게 발견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체르노빌 사람들은 그저 병에 걸린 채 죽어가야만 했다.

〈체르노빌 목소리〉의 처음과 끝은 남편의 죽음을 지켜보는 아내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첫모임에서 첫 번째 장을 읽는 순간, 모임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울음을 삼키고 견디느라 제대로 낭독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방사선 덩어리가 된 남편에 대한 여자의 지극한 사랑은 참으로 위대했다.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과 방사선이 삶을 근본에서부터 망가뜨려도,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는 생애의 폐허 속에서도 끝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있는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 사랑의 말들을 읽을 때, 그냥 울었다. 합독에 참여했던 초록시민들은 어떤 해설과 평가도 없이 그냥 소리 내어 읽기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책을 낭독하면서 몸으로 전해지는 어떤 울림과 떨림의 실체를 느꼈다.

유통기간 지난 원자로 계속 도는 한국

오늘 4월 26일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체르노빌 이후 30년. 체르노빌의 사신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통기간이 지난 원자로를 계속 돌리고 있으며, 어떤 원전 직원은 히로뽕을 투약하고 근무하기도 했다. 검사내용이 조작된 짝퉁 부품을 10년 이상 사용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30년 전, 1986년 체르노빌의 재앙은 어느 먼 곳의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바로 여기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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